학창 시절, 각 대학에서 국어운동학생회 회원으로 활동을 한 적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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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로 2008년 06월 15일 06시 26분에 남긴 글입니다.
[옮김] 박흥호 동문 이야기

누리통신에서 검색을 하다가 박흥호 후배 이야기가 있어 옮깁니다.

1989년 어느날 공병우 박사께서 한 젊은이가 보낸 편지를 보여주며 국어운동을 한 당신의 후배가  우리 문화원에서 함께 일하기로 했다며 기뻐하시는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산에서 국문과를 나와 국어 교사 일을 하다가 과감하게 그 직장을 버리고 올라온 박 동문도 보통사람이 아니고, 그런 그를 감싼 공박사는 더 훌륭한 분입니다. 그는 열심히 공박사의 가르침을 받고, 아래아한글 개발과 한글과 컴푸터 회사를 만드는 일에도 주역으로 일했고, 그 뒤에 누리집(홈페이지)를 쉽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세계에 떨치고 돈도 벌었지지요. 그런데 회사를 경영하는 일엔 서툴러 직원들에 회사까지 빼앗겼다가 다시 일어나려했슨데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공병우 박사가 우리 동문회에 사무실도 주셨던 종로구 와롱동 시절은 우리 모임 황금기였습니다. 이야기 마당을 다달이 열어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 한글단체를 도와 한글사랑운동에 불을 불였습니다. 그때 도와주신 공병우 박사님이 그립습니다. 김영환, 김슬옹, 허재영, 김한빛나리,박흥호와 여러 후배들이 보고 싶습니다. 모두 잘 되길 비손합니다.
  
2008.6.15.  이른 새벽에 중국 절강성 회계산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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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아한글의 주역'이며 "나모 웹에디터"의 (주)나모인터랙티브의 박흥호 사장


드림위즈의 이찬진 사장과 함께 ‘아래한글 창조의 주역’으로 꼽히며, 현재 (주)나모 인터랙티브 CEO로 재직 중인 박흥호 대표이사. 그는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출신으로 일선 학교 교사를 거쳤으며 그의 전공을 정보화 사회의 변화에 발빠르게 접목시켜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신선한 '성공신화'를 보여주고 있다.

박 동문은 1981년 부산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박지홍 교수를 만난다. 박 교수는 글자 생활을 기계로 해야 한다며 타자기 강습을 받게 했고, 그는 이 과정에서 한글 타자의 엄청난 속도를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의 말과 글, 민족정신을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국어운동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역임하게 된다.

그는 부산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88년에 컴퓨터를 구입하여 밤 새워 각종 컴퓨터 서적에 몰두했다. 컴퓨터를 시작한지 3개월만에 워드스타 2000 활용기를 잡지사에 투고했고, 이후 한동안 워드프로세서 분석 기사 작성에 몰두했다. 부산 남일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제자들을 교육하면서도 방학 때는 공병우 박사의 ‘한글문화원’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정년까지 일하는 데 한 번도 회의를 품어본 적이 없었던 교직을 과감히 박차고 1990년부터 한글문화원 연구원 일에 몰두했다. 그 해 한글 철자법을 자동검색·수정하는 ‘한글스펠러’ 개발에 최초로 성공했고 (주)한글과 컴퓨터(이하 한컴) 창립으로 한컴 개발팀과 한글문화원 연구원을 겸직한다. 그러나 1991년 세벌식 글자판의 홍보와 보급에 집중하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1년 남짓한 기간’을 마감하고 연구원을 사직했다.

그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아래아 한글’ 개발을 필두로 용어 한글화, 수식 편집기, 스펠러, 한자 자전, 유의어 사전, 프라임 영한 사전, 한글 학회 큰사전, 심마니 프로토타입 등의 개발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1995년 창립부터 함께 한 5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한컴 생활을 사실상 마감하고 (주)나모 인터랙티브를 공동 창립하여 인생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박 동문은 창립 첫해에 ‘한글학회 국어학 자료은행 사이트 개설’을 위한 아래아 한글 뷰어 개발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홈페이지 저작 소프트웨어가 너무 일차원 수준임을 깨닫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회심의 역작 ‘나모 웹에디터’ 개발에 착수한다. 박 동문은 (주)나모 인터랙티브의 3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1998년, ‘나모 HWP 뷰어 3.0’ 출시에 성공해 우리나라 인터넷 도서관 시대 개막의 새 장을 연다.

2001년에는 3년 임기를 마치고 공동 대표이사를 내놓았으나 7개월만에 다시 나모의 대표이사를 맡은 후로도, PDA용 소프트웨어인 핸드스토리 개발, 3D 온라인 게임 가약스 개발 등을 주도했다. 불혹을 갓 넘긴 박 동문의 삶에는 효원캠퍼스에서 기른 도전정신이 깃들어 있다. 박 동문은 언제 어디서든 효원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도전의 연속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항상 부산대학교의 명예를 생각하면서 뛰고 있다. 오늘의 그가 있게 된 것도 부산대학교와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회상이다. 그는 모교의 후배들에게 ‘미래는 항상 도전하는 자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며 끊임 없는 도전과 자신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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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권㉨1967-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