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각 대학에서 국어운동학생회 회원으로 활동을 한 적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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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규 2001년 05월 12일 09시 54분에 남긴 글입니다.
[답변] 대학연합회 7대 회장(정지훈)의 국운회 활동 회고

['가꾸미'님의 글입니다.]
<다음은 국어운동학생회 동문회 월보였던 '소리' 4호 (1972. 12. 31.펴냄 / 회장 이택로 / 엮은이 김정수)에 실렸던 글입니다.>

"과도기의 어려움"

-삼가 이 글을 군대에 계신 최노석 형께 바친다. 그리고 국운회 회원 여러분께도-
정지훈 (연합회 7대 회장, 서울대)

내가 국운회에 들어온 것은 올 3월의 일이다. 국운회를 잘 알지도 못한 내가 무거운 책임을 맡아 넉 달 남짓 활동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겪었다. 훌륭한 선배님, 좋은 선배, 벗, 후배들을 알게 되고 사귀었다. 이 넉 달은 내 대학 생활 4년을 통해서 어쩌면 가장 보람차고 알찬 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뿐 아니라 다른 회원들에게도 국운회에서 활동한 기간이 가장 보람찬 기간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내 모든 것을 온통 국운회에 바쳤던 것 같다. 나보다 먼저 국운회에서 정열을 쏟았던, 나 이전의 회원들은 이미 기력을 잃고 회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때였다. 어떤 이는 심지어 후회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러한 국운회의 상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젊은이들이 왜 그리도 패기가 없느냐며, 힘차게 거센 파도를 헤쳐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뜨거운 피와 정열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항해 도중 암초에 걸린 배를 손 써서 수리하고 난바다로 항해를 계속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는 오히려 국운회에 발 벗고 뛰어들어 이 침체를 타파해야 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는지도 모른다.
이 즈음 나는 서울대학교 국운회의 '다섯 번째 고운이름 자랑하기'의 준비에 바빴다. 서울대 국운회의 집안 사정과 학원 사태로 말미암아 한 해를 걸렀던 이 연례행사를 올해도 넘길 수는 없다는 당위 의식이 나를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게다가 고운이름 자랑하기를 세종대왕 탄신을 기념하는 세종의날(5월 15일)의 행사로 조정하려는 생각 때문에도 다급해졌다. 또 같이 일하며 행사를 치를 회원이 없어서 그 모집에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벽보를 붙여 새 회원을 공개로 모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회원 포섭에 주력했다. 아울러 연합회 회원대학 모집도 같은 방법으로 병행하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이미 타버린 잿더미 같은 국운회가 어떻게 재건될 수 있겠냐는 이전 회원들의 말에는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신념은 갈수록 굳어졌고 어떻게 해서든 국운회를 다시 일으켜야 겠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그리해서 국어운동이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고, 끝내는 이런 운동이 필요치 않은 그 날을 빨리 오게 해야 겠다는 불 같은 열정이 치솟았다. 많은 회원들이 여기저기서 구름처럼 모여 들었고 우리의 신념을 굳히며 연구하는 일과 계몽 할동, 회원끼리의 친목 도모가 계속됐다. 지금까지 국운회의 활동이 단절된 줄만 알고 있던 선배들도 찾아와 회원들을 격려하게 되었고, 우리와 뜻을 같이 하시는 선생님들도 여간 반가워 하지 않으셨다. 후배가 없는 선배, 제자가 없는 스승은 항상 외로운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곡절도 많았다. 여기에는 장영숙 부회장님과 윤경혁 님, 권오경 님, 장원영 님의 의욕과 애씀이 큰 힘이 되었음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최재경 님의 도움을 잊을 수 없다.
충북대학 국운회의 두 돌 맞이 잔치에 한갑수 선생님, 문제안 선생님을 연사로 모시고 다녀온 일, 첫 번째 외솔배 갖기 체육대회 때 충북대 회원 마흔 명이 대거 상경해서 여관에서 모든 회원이 밤을 새며 정담을 나누던 일, 전국 순회강연, 서울대의 한글집안 모임,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돌아다니며 발표 모임을 갖던 일,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학교 종합 캠퍼스에 식목일 기념 식수를 하러 간 일, 모두 새롭게 떠오른다.
지금도 관악산에는 국운회란 이름이 하얗게 칠을 한 나무판자 위에 쓰여 있겠지. 그 나무판자를 이름표로 가진 나무는 관악 캠퍼스로 맨처음 이사왔음을 언제까지나 자랑스러워 하겠지.
국운회여! 그 나무들처럼 무럭무럭 싱싱하게 자라거라. 무성하게 가지를 뻗어서 관악산을 아니 온 나라를 뒤덮어라. 나아가 너 그리고 한글과 배달의 한국이 있음을 세계 만방에 뽐내어라. 나는 내 처지에서 언제든지 너를 도우리라. 그리고 네가 외롭지 않게 이웃 단체를 만들어 도와주마. 부디 거센 비바람을 이기고 모진 눈보라를 견디며 억겁까지 꿋꿋하여라, 국운회여!

<이 동문회 월보에는 '동문 소식' 란이 있는데, 거기에 실린 소식 하나를 더 옮긴다.>

정낙균 동문은 해외 특수 근무 수당 12,328원(31$)을 윤경혁 동문을 통해서 동문회로 보내왔다. 너무도 감격스러워 울먹이는 동문도 있었다. '소리'를 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무능한 존재도 필요할 때가 있다면 기꺼이 부름에 따르겠다."는, 꿋꿋하면서도 퍽 다감한 내용의 편지를 썼다.

* 추억 어린 그리고 여러분의 청춘을 불사른 국운회 활동이나 한말글사랑 운동 내용들을 많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가꾸미 드림

[------ 위의 글에 대한 답변 -------]
내용중에 나오는 인물들을 찾습니다.
권오경, 장원영..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 인데 게을러 연락도 못하고 결국은 연락처도 없어지고...

차제에 가꾸미께서 전에 활동하던 동지들의 연락처를 수집해서 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심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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