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병우 상 제정에 필요한 자료 문건과 공 박사님 추모의 글을 올리는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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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2009년 03월 10일 06시 43분에 남긴 글입니다.
공병우 박사를 처음 만난 날 - 송현


한글기계화 아버지 공병우 박사를 처음 만난 날

송현 시인이 본 아름다운 세상(30)
  
송현(시인. 본지 주필)  


▲공병우 박사   © 브레이크뉴스

내가 서라벌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을 하던 1974년 겨울 어느 날 공병우 속도 타자기를 6개월 월부로 샀다. 타자 연습을 매일 하려고 그 동안 안 쓰던 일기까지 꼬박꼬박 썼다. 글쇠에 홈이 패일 정도로 부지런히 타자 연습을 했다. 마침내 󰡒전화와 한글타자기󰡓란 타자기에 관한 글도 발표했다.

1976년 어느 날 광화문에 있는 유니온타자기판매상사 한 민교 사장으로부터 공 병우 박사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뜻밖의 전갈을 받았다. 며칠 후 물어물어 종로구 서린동 111번지 공안과 안에 있는 '공 병우 한글기계화연구소'로 갔다. 말이 연구소지 아무 치장도 없는 썰렁하기 짝이 없는 작은 방이었다. 그 썰렁한 방에는 연구원 한명이 타자기 활자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고,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가 공 박사였다. 나는 긴장하여 공 박사에게 인사를 드렸다. 공 박사는 반갑게 악수를 청한 뒤에 입가에 어린이 같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반갑수다. 송 선생께서 밥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학교를 그만두고 잘못된 한글 기계화 정책을 바로 잡는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앞이 캄캄하였다. 이 말을 내가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한 것이 잘못인지, 잘한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뜻 시인도 부정도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가 그 말을 한적이 분명히 있는데,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겁에 질려 이렇게 대답했다.

"네, 박사님. 제가 그런 말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오. 송 선생이 그런 말을 한 게 사실이라면, 우리 연구소에 와서 저와 같이 한글 기계화 연구를 한번 해보시지 않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답변하지 않아도 좋아요. 송 선생으로서도 중요한 문제이니 신중히 생각한 뒤에 답변해 주시오."

나는 너무나 뜻밖의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한참동안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저는 손재주가 얼마나 없느냐 하면, 전기가 나갈 경우 두꺼비집도 손볼 줄 모르고, 형광등 전구도 제대로 끼울 줄 모를 정도입니다. 이런 제가 어찌 한글 기계화를 연구할 수 있겠습니까?"

"송 선생,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오. 그 동안 내가 송 선생이 쓴 글도 읽어 보았고, 또 송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수소문해서 알아보았는데, 송 선생 정도면 열심히 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훌륭한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오. 하여튼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니 깊게 생각해 보고 답변해 주시오."

집에 들어와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학교에 사표를 내고 공 박사 연구소로 가는 게 어떻냐고 했더니, 아내는 그게 말이라고 하느냐면서 첫말에 반대하였다. 학교에 가서 친한 선생들에게 같은 의논을 하였더니, 역시 첫말에 반대하였다. 부산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역시 반대하였다. 다들 "공 박사의 연세가 일흔인데,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고, 만약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는데, 왜 그런 모험을 하느냐'고 반대하였다.

나는 며칠을 고심한 끝에 여러 사람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멀쩡한 직장인 서라벌고등학교에 사표를 내고, 공 병우 한글 기계화 연구소의 부소장으로 취임하였다. 1976년 6월의 일이다. 2년 동안 내가 일하는 것을 지켜본 공병우 박사는 나에게 공병우 타자기 주식회사를 다 맡겼다. 서른 한 살의 젊은 날에 나는 공병우 타자기 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 그로부터 공박사가 돌아가실 때까지 공박사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돌아간 뒤에는 한글문화원을 재건하여 공병우 기념관을 만들려고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공병우 박사의 한글기계화 분야의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실용적 한글타자기를 발명하다.
쌍초점 원리를 발명하여 고성능 한글타자기를 만들었고, 이것이 한글정보화의 초석이 되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인터넷 최강국이 되는 바탕에는 초성, 중성, 종성의 세벌식으로 구성된 과학적인 한글과 자음, 모음, 받침으로 구성된 공병우식 3벌식 타자기가 있기 때문이다.

2)각종 한글기계 글자판 통일을 이룩하다.
한글타자기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각종 글자 생산 기계들간의 수직적 글자판 통일을 이룩하였다. (한글기계화개론.송현. 청산출판사 1985년)

3)과학적인 한글 글자꼴의 기본을 정립하다.
공병우식은 한글 글자꼴의 구조대로 닿자(초성글자)와 홀자(중성글자) 받자(종성글자)를 각각 1벌로 하는 세벌식이기 때문에 가독성과 판독성이 높은 합리적인 글자꼴의 터전을 마련하였다.(한글자형학. 송현. 디자인출판사. 1985년)

4)공병우 한영타자기를 개발하다.
수동.전동. 전자식 한글기계에서 한글과 영문 대소문자를 완벽하게 두 나라 글자를 찍을 수 있는 공병우 한영타자기는 세계적인 발명품으로 한글의 과학성과 한글기계화의 우수함을 입증하였다.

나는 공병우 박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 한고 생각한다. 한글기계화의 아버지 공병우 박사는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남은 일은 산 자들의 몫이다. 쥐뿔도 없는 내가 그 동안 앉은뱅이 용쓰듯이 마음으로만 구상했던 것들은 대강 다음과 같다.

1)공병우 기념사업회 구성
2)공병우 박물관 건립
3)공병우 전집 간행
4)공병우 한글기계화상 제정
5)세벌식으로 남북한 글자판 통일
6)한글문화원 법인화 추진
7)공병우 사이버공과대학 설립
8)공병우 정신을 기리는 각종 사업

위에서 열거한 일들은 어떤 것은 공박사의 제자들이, 어떤 것은 공박사의 가족들이, 어떤 것은 한글과 한글기계화 관련 인사들이, 어떤 것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할 일이다. 내년이면 공병우 박사 탄신 100주년이 되는데,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공 박사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제자의 한 사람으로 닭 울기 전에 스승을 세 번 배반한 베드로처럼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럽다.(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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