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병우 상 제정에 필요한 자료 문건과 공 박사님 추모의 글을 올리는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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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2007년 02월 03일 09시 46분에 남긴 글입니다.
공병우 박사님 나신 100돌 기념식 소식

공병우 박사에게 ‘한겨레 스승상’을 드리자

탄신 100주년을 맞아...한글 발전 통한 정보통신 문화강국 기틀 마련
  
이대로 논설위원  
  


▲공병우 박사 나신 100돌 기념식이 24일 신문로 한글회관 얼말글교육관에서 열렸다. ©이철우 기자  

공 병우 박사께서 이 땅에 오신 지 오늘(1월 24일)로 100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신 지 12년이 다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공 병우 박사께서 나신 100돌을 맞이해 우리 한글을 쓰는 한겨레의 이름으로 '한겨레 스승상'이란 상을 드리자고 제안합니다.



공 박사께서 살아 계실 때 쓰신 ‘나는 내식대로 살았다’라는 자서전에서 "나도 상을 여러 개 받았다. 사실, 공로를 인정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상을 받으러 나갈 정도로 나는 한가한 사람은 아니다. 상보다는 연구 개발한 것을 많은 민중에게 보급하여 그들에게 문명의 이기가 주는 혜택을 진정으로 받도록 해 주는 데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언제나 앞선다. 과학기술처에서 주는 '과학 문화상'과 5.16 혁명세력이 주는 '5.16 민족상'은 굳이 사양하였다. 어떤 상은 대리인을 보내 받기도 했다. 그러나 '외솔상'과 '적십자 박애상'은 만사 제쳐놓고 직접 나가서 받았다. 그렇지만, 진짜 상은 내가 죽은 뒤 하나님의 판정을 받고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내 개발품의 이치를 깨닫고, 활용하여 많은 동지를 얻으면 이 이상의 영광된 상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 박사님은 상을 받으러 가는 노력과 시간까지 아까워하면서 한글 기계화, 한글 과학화 연구와 운동을 하셨습니다. 왜 그리 바쁘게 살고 연구했을까요? 당신이 아는 것, 당신이 찾고 개발한 것이 나라와 겨레가 잘 사는 것이란 것을 온 겨레에게 알려주고 그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자신만 잘 살려고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한글이 빛나야 나라가 빛난다는 것을 알고, 한글이 빛나는 길, 한글 기계화의 참된 길을 찾아 알려주어도 정부와 국민이 그걸 모르고 딴 길로 가는 게 안타까워서였습니다. 한글을 즐겨 쓰고, 빛내면 우리나라와 겨레가 좋다는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가지 않는 한국 정부와 학자에게 그걸 깨닫고 실천하게 하려니 시간과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참된 뜻을 모르고 한글이 빛나는 길을 가로막는 정부와 정치세력이 주는 상은 받을 가치가 없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라고 보고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알아주는 분들이 주는 상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상, 진짜 상은 이 땅을 떠난 뒤 살아있는 이들이 당신께서 한 일과 뜻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 박사님이 돌아가신 지 12년이 다 되는 오늘, 이분이 태어난 100돌을 맞이해서 이분에게 '한겨레 스승상'이란 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분의 삶과 정신과 연구업적이 온 겨레가 본받고 배워야 할 것이어서 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계신 임께서도 우리가 겨레의 마음으로 주는 이 상을 기쁘고 즐겁게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왜 상을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적어봅니다.

1. 한글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공 병우 박사는 살아 계실 때 "나는 80평생 중국 한자도 배워 써봤고, 일본 한자도 배워 써봤다. 그러나 한글이 으뜸이다. 한글은 금이고, 로마자는 은이고, 가나는 구리이고, 한자는 떡쇠다.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한글로 가장 빛나는 한글 문화권을 만들어, 세계 젊은이들이 오늘의 영어를 배우듯이 한글을 배우는 바람이 일어나는 날이 하루바삐 오도록 하는 길이 애국이고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런 바람이 일어날 바탕을 마련하려고 온 마음과 몸과 시간을 다 바쳤습니다.
  
한글이 서양의 로마자보다도 더 훌륭한 글자임을 가르쳐주었고 외국인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는 바람이 있어날 날이 오도록 힘쓰셨습니다. 그래서 공 박사께서 바라는 대로 오늘날 많은 외국인이 한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달 중국과 일본에 가서 그 한국어 교육바람을 보고 누리망 신문 '참말로'에 보고 느낀 글로 썼습니다. 이제 정부와 학자는 말할 거 없고 온 국민이 그 바람이 식지 않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와 교육방법과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중국 한문과 일본말 공부만 했는데 이제 중국과 일본인들이 우리 말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 바람이 더 오래, 더 세차게 불게 해야겠습니다.

2. 한글이 빛나는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공 박사님은 1993년 '한글 과학화'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한글전용과 3벌식 한글 과학화만이 한글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정보전쟁 시대인 오늘날, 한민족이 가진 가장 강한 무기는 한글입니다. 한글을 천대하는 사람과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자는 민족문화를 좌우하고 민족문화는 국가흥망을 좌우한다는 격언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라면서 한글이 빛나는 길은 한글의 특징과 장점을 살려 쓰는 세벌식 한글 과학화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님은 1980년에 미국에 가서 셈틀 공부를 하고 한글문서편집기도 발명한 뒤 19988년에 돌아와서 "붓은 칼보다 강합니다. 현대인의 붓은 글자판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표준판인 2벌식 글자판은 비능률적 비합리적인 자판이어서 국민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해서 그 피해가 막심할 뿐 아니라, 속도가 느린 글자생활로 말미암아 과학 문화 발전의 뿌리 구실을 하는 글자의 생산속도를 느리게 하고 있습니다. 고성능 한글 기계의 대중화로 모든 국민이 기계 문맹을 벗어나서 빠른 속도로 글자생활을 하도록 하는 한글 기계화 정책을 다그칩시다."라면서 한글 과학화로 셈틀 통신시대를 활짝 열자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한글통신시대가 되어 나라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3. 정보통신 선진국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 토대는 한글이 타자기와 셈틀로 글쓰기를 할 때 매우 적합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중국이나 일본처럼 한자를 썼더라면 정보통신 강국이 빨리 될 수가 없었습니다.



▲공병우 박사가 개발한 세벌식 타자기.     ©이철우 기자  
한글을 기계로 쓰는 길을 열 때 정보통신 강국이 된다는 것을 안 공 박사는 "나는 시간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살아왔다. 내가 한글 과학화, 기계화를 꾀하는 것도 생명처럼 여기는 시간을 온 국민이 효과 있게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모든 문명의 이기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여 주는 것이다. 생명은 한정되어있으니 고성능 기계를 잘 이용해 시간을 절약해 생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얻자는 것이다."라면서 한글 기계화연구와 실천에 힘쓰고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한글속도타자기를 발명해 쓰게 했으며, 셈틀시대를 맞이해 한글문서편집기를 발명해 쓰게 하고 오늘날 온 국민이 즐겨 쓰는 한글 문서편집기 '글'이 태어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 가서 셈틀 공부를 하고 스스로 한글문서편집기를 개발하고 1988년에 귀국해서 종로구 와룡동 95번지에 한글문화원을 개설하고 강태진, 이찬진, 정래권 등 젊은 과학자들에게 사무실을 공짜로 쓰게 하면서 '글'을 개발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문서편집기를 쓰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되는 길을 닦아주었습니다. 한글을 만들고 쓰게 가르친 세종대왕이 겨레의 스승이듯이 한글을 기계로 써야 한글이 빛나고 나라가 빨리 발전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공 박사도 겨레의 스승입니다!

4. 자주 문화강국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공 박사는 일찍이 1972년에 ‘인간에게 가장 강한 무기는 글자이다’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동물 중에서 말과 글자를 먼저 가지게 된 동물이 인간이다. 인간은 말과 글자를 먼저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문화를 건설하고, 동물을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이 오늘날 위대한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고, 또는 달나라를 가게 된 것도, 인간이 글자를 잘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글자 없이는 과학을 발달시킬 수 없고, 문명의 이기를 개발할 수도 없고, 활용할 수도 없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에게 가장 강한 무기는 글자이다. 글자를 가지지 못한 나라 사람들의 생활은 동물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라고 쓰면서 세계글자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가진 우리가 "한글을 잘 이용할 때 세계 으뜸 문화강국이 될 것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으뜸 글자인 한글보다 중국 한문이나 미국 말글을 섬기는 얼빠진 정치인과 대학교수가 판치기 때문에 자주 문화가 빨리 꽃피지 못하고 문화강국이 안 되었지만 조금만 더 한글을 잘 이용하고 즐겨 쓰면 분명히 자주문화강국이 될 것입니다.
  
공 박사님은 1988년 미국에서 돌아와서 한글로 명함을 만들자는 운동을 하셨는데 "입으로는 한글이 세계 으뜸 글자라고 하면서 한글을 사랑한다는 학자나 정치인, 기자들이 명함에 제 이름을 한자로 쓰고 있는데, 이들은 한글이 얼마나 훌륭한 글자인지 모르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이 없을 때 참된 한글문화가 꽃필 것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문광부장관과 문화정책국장을 만났는데 국장의 명함에 이름을 한자로 쓴 것을 보고 아직 우리 자주문화는 꽃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 서로 돕고 베풀며 사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공 박사는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돈을 값있게 쓰기도 했습니다. 자기 이익과 편안함만 생각하고 산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도 돕고 뜻있는 곳에 돈을 썼습니다. 이 점 오늘날 잘 사는 사람은 말할 거 없고 모두 배우고 따라서 하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임은 돈을 아껴 쓰고 검소하게 사셨지만 좋은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남을 도와주거나 좋은 일을 하고서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에 한글학회에도 안성땅 34,000평을 기증하셨다는데 그 사실을 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지금 땅값으로 따지면 적게 잡아도 34억이 될 것입니다. 그런 큰돈을 기증하고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글학회 간부들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눈먼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기독교청년회 회관을 세울 때도 많은 돈을 냈다고 합니다. 한겨레신문을 창간할 때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그밖에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많이 도와주셨고 또 다른 어려운 이나 한글관련 일에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시신까지도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실험용으로 바쳤습니다. 돌아가시면서까지 남을 도왔습니다. 참으로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인도의 테레사 여사가 훌륭한 일을 많이 해서 훌륭하다는 방송을 보면서 공 박사님은 그 보다도 더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6. 참된 교육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오늘날 교육문제가 대단히 큰 문제입니다. 교육 망국병이라고 할 정도로 학벌과 간판을 따기 위한 시험지옥인 우리의 교육풍토에 국민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우리 교육이 제대로 될 수도 없고, 이 나라가 바로 설 수도 없고 이 겨레의 앞날이 밝지 않습니다.
  
우리 교육은 참된 사람, 참된 한국인, 참된 세계인, 참된 지식인이 되는 공부가 아니라 내 자식만 잘되고 출세하면 된다는 이기심만 가득한 시험지옥이고, 지나친 사교육비에 나라가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람 됨됨이와 능력보다 학벌과 간판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치료하는 처방과 약이 공병우식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공병우 님은 박사 학위가 있지만 학교 졸업장이 없는 분입니다. 학교 졸업장보도 자격증과 실력으로 박사 학위까지 땄습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스스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상대할 때도 일류대학을 나왔다거나 학위가 무엇이냐를 따지기보다 사람 됨됨이와 능력과 정신과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7. 시간이 돈이고 시간을 버는 일이 잘 사는 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공 병우 박사의 삶을 말할 때에 "시간은 돈이고 생명이다. 시간을 아끼고 시간을 잘 활용하면 돈을 버는 것이다.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공 박사는 과학과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는데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고속도로를 만들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시간을 벌려는 것이고 그게 돈을 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고 한글 기계화연구에 힘썼습니다. 한글을 쓰는 한겨레가 모두 시간을 벌어 잘 살게 하려고 한글타자기를 발명했습니다. 기계로 한글을 잘 쓰는 연구와 운동을 할 시간을 얻으려고 넥타이를 매지 않고,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가지 않고 구두 뒤축도 접어 신었습니다.
  
당신만 시간을 아낀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시간도 빼앗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지내지 말고, 돌아가셨다는 것도 바로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허례허식을 하지 말자는 것도 모두 시간을 아끼고 값있게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온 국민이 이분처럼 시간을 벌 수 있는 연구를 하고, 발명을 하고, 실천하면 힘센 나라가 되고 더 잘 살게 될 것입니다.

공병우식 삶을 본받을 것을 다짐합니다.

이 밖에도 공 박사가 보통 사람보다 먼저 깨닫고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보여 준 것은 많습니다. 참된 개혁과 개선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말보다 실천하는 분이었습니다. 한글사랑과 나라사랑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고 실제 한글을 써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실천이 한글 기계화, 과학화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발명가와 기술자를 우대해야 나라가 잘된다고 가르쳤습니다. 한글학회에서 다달이 나오는 한글새소식도 공 박사님의 한글사랑 실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분이 하신 말씀과 실천한 행동은 남다른 게 많았는데 모두 겨레에게 가르침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공 박사님을 모시고 함께 한글 기계화운동을 한 임종철 선생은 공 박사님의 사람됨을 "21세기 사람이 20세기에 살다 가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잘 보! 고 말씀했다고 생각합니다. 남보다 먼저 깨닫고 행동한 선각자, 선구자, 발명가였기에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본인만 힘든 게 아니라 가족이나 가깝게 모시고 지내는 사람들도 그분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고, 그분을 이해하지 못해 어렵기도 했습니다.
  
제가 돌아가시기 전 7년 동안 공 박사님 곁에서 함께 한글운동을 할 때 좀 힘들고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너무 외롭고 힘들어하셔서 저라도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모셨습니다. 그때 모시고 따른 일은 참으로 잘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임이 가르침과 은혜를 잊지 않고 죽는 날까지 한글사랑운동을 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합니다. 임이 못다 이룬 뜻, 세벌식 자판 쓰기 운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합니다.

한글운동가 공병우 박사는?



공병우는 1906년 평안북동 벽동에서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평양 의학강습소에서 의술을 배운 뒤 정규학교는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1926년 조선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했다.

1938년엔 국내 최초의 안과전문 병원 ‘공안과’를 세웠는데, 당시 눈병 치료를 받으러 왔던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과의 만남이 계기가 한글사랑의 외길을 걷게 됐다.

1947년부터 한글 타자기 연구를 시작해 2년 뒤인 1949년 고성능 한글 타자기 발명한 이래 1994년 매킨토시용 무른모 한손자판을 개발하기까지 평생을 한글기계화 운동에 매진했다.

또한 ‘점자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고 서울 맹인 부흥원 설립하는 등 시각장애인 교육에 힘쓰기도 했다.

1959년부터 1977년까지 한글학회 이사를 지냈으며, 1988년 한글문화원을 설립하여 한글 글자꼴과 남북한 통일자판문제 등을 연구했다. 바로 '자판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공 박사는 결혼식을 낮에 하는 건 시간 낭비라며 반대했고, 청소 등 생활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문지방을 없애버렸으며, 사과 궤짝으로 침대를 만들어 쓴 쓰는 등 남다른 삶을 보여줬다. 또 며느리에게 폐백 인사 절하는 것은 집우치우고 악수나 한번 하자고 했던 일과, 일흔이 넘어 사진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것 등 여러 일화를 남겼다.

공병우 박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도 컴퓨터 통신 ‘하이텔’에 한글기계화 운동과 세벌식 타자기의 장점을 알리는 글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렸다고 회고한다.

1995년 3월 7일 공병우 박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유족들은 "아무에게도 죽음을 알리지 말고, 쓸만한 장기와 시신은 기증하라"는 유언에 조용히 따랐다.

'고집쟁이'로 알려진 고인이 남긴 책으로는 자서전인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대원사, 1989년)와 사진집 <공병우 사진집 1호, 2호> 등이 있다. / 이민우 기자








이대로 참말로 논설위원은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창립 초대 회장  
1994년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 조직위윈장
1997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2000년 한글세계화추진본부 상임이사(현)
2004년 한글날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
2005년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2006년 한글발전 공로 국무총리 표창




  





2007/01/25 [12:36] ⓒ참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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