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병우 상 제정에 필요한 자료 문건과 공 박사님 추모의 글을 올리는 방입니다.

105  1/9 모람되기 들어가기
이대로 2000년 06월 06일 00시 29분에 남긴 글입니다.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던 이야기

한글 타자기가 대중화 대면서 공병우 속도 타자기 회사도 잘 되었으
나 한글 기계화에 무식한 군사정부가 공병우식 타자기 글자꼴이 예쁘지 않다고 4벌식 타자기를 국가 표준으로 함으로서 공병우 타자기 회사는 어려움에 처했고 공박사는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와 맛서 싸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김재규를 비롯한 군사혁명찌꺼기들이 만든 중경재단이란 곳에서 공병우 타자기 회사를 인수해 발전시키겠다고 하니 선듯 넘겨주었는 데 공박사의 병원과 집까지 담보로 많은 빚을 얻어쓰고 부도를 내는 바람에 회사도 망하고 많은 재산을 날리게 되었다. 그들에게 사기 당한 것이다.

그러나 공박사는 한글을 살리고 잘못된 한글 기계화 국가 표준을 바로잡기 위해 군사독재 정권과 맛서 싸우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결국 악명높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수모를 당하고 미국으로 망명해서 컴퓨터 공부와 연구를 하고 민주화 바람이 부는 1988년에 귀국 한글문화원을 만들고 한글사랑운동을 다시 하시게 된 것이다.

그 때 하이텔 피씨 통신에 올렸던 글을 여기 다시 옮긴다.




제 목:남산에 끌려 갔던 이야기 관련자료:없음 1/5
보낸이:공병우 (Kongbw ) 1993-11-06 11:22 조회:1176
───────────────────────────────────────
이 글은 공병우 박사님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의
제 8장 '고독한 투쟁' 157~161쪽에서 뽑아 요약한 글입니다.
1969년 3공 군사정부가 비과학적인 4벌식 표준자판을 제정하고 다른
글자판 보급을 관권으로 탄압할 당시, 공병우 박사님이 과학적인 3벌식
글자판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속칭 '남산'으로 통하던 중앙정보부에
끌려 갔던 이야기입니다. 1993. 11. 6. (한글 문화원 편집자)
----------------------------------------------------------------

남산에 끌려갔던 이야기
======================

20여 년 전 나는 정부에서 정한 4벌식 표준자판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해, 임 종철 선생님과 함께 타자 경기 대회와 세미나를 열고 연구 보고서를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그러자 정부는 글자판 통일을 위한 심포지엄을 방해하거나 자판 비교연구를 발표한 잡지사를 폐간하는 등 심한 탄압을 했다. 이렇게 탄압을 해도 소용이 없자 과학기술처 장관이 우리집으로 와서 나를 회유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문화상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장관에게 문화상을 사양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에 고발을 했는지, 장관을 만난 지 며칠 후 남산에서 왔다는 두 사나이가 나를 찾아왔다.
“중앙 정보부에서 왔는데 잠깐 갑시다.!” 나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로 끌려 갔다.

먼저 사진실로 가서 앞가슴에 신문에서 보던 것과 같은 숫자판을
붙든 채 사진을 찍었다. 마치 간첩과 꼭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5~6명의 젊은이들이 책상에 둘러 앉아 있는 사무실로 끌려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내게 “왜 정부의 시책을 반대하는가?”하고 질문을 했다. 과학기술처에서 잘못한 점에 대해 내가 몇 마디 말하자, 그 방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일제히 “이 새끼, 여기가 어딘데, 정부가 잘못한 것을 따따부따하는 거야?”하고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그날 심문을 마치고는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갔더니 그 사람들의 태도가 아주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시중에 나가서 타자학원을 돌아다니면서 3벌식과 4벌식 타자기에 대해 알아 본 모양이었다.

3벌식은 한 달만 배우면 전문 타자수로 취직이 가능하지만, 4벌식은 3개월 교육을 받아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 통신과에 가서 3벌식은 영문 타자기보다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북한과 외국에서 들어 오는 라디오 방송을 직접 받아 찍는 속기 타자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반면 4벌식은 영문보다 느린 타자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벌식이 훨씬 더 우수하다는 것을 조사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처가 잘못하고 공박사님을 고발했습니다. 과학을 위해서 앞으로 더욱 투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과장님 앞에 가서는 정부 시책에 반대하지 않겠다고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이 사건을 무사히 끝낼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풀려 나왔다.

정부 시책을 반대하다가 고발을 당한 내가, 애국애족하는 사람들이 끌려 가면 고문으로 죽거나 병신이 되어 나오던 남산에서 '이 새끼' 소리를 듣다가 무사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이고 고성능인 세벌식 한글 기계의 진리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로,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진리의 격언처럼, 내가 주장한 타자기가 칼을 물리치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이나 독일 사람들은 윗글쇠를 3% 누르는 로마자 자판을 시간과 정력 낭비라면서 '대문자 안 쓰기' 운동을 하는데, 3공 군사 정부가 1% 누르는 3벌식 자판을 버리고 10% 누르는 4벌식 자판을 만들어 놓더니, 5공 군사 정부는 4벌식을 버리고, 윗글쇠를 20%나 누르는 괴물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한글은 나날이 죽어가고 한자가 나날이 기승을 부리는 오늘의 현실을 볼 때, 선진국의 문화 침략으로 한글은 한자와 로마자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될 것만 같다. 윗글쇠를 1% 누르는 글자판으로 만든 한글 기계들, 특히 타자기(수동ㆍ전자)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한자의 보급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전거 붐이 일어나듯이, 먼저 타자기의 붐이 일어나서 국민 모두가 기계로 글자를 치게 되어야만 한글도 살고 나라도 산다고 믿는다.(편집자 주)

한글 문화원 서울. 종로구 와룡동 95 우:110-360
전화:744-3268, 전송:742-9580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신의키스

지음권㉨1967-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