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병우 상 제정에 필요한 자료 문건과 공 박사님 추모의 글을 올리는 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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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2000년 06월 09일 08시 57분에 남긴 글입니다.
한글을 살리기 위한 또다른 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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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한글을 살리기 위한 또다른 나의 투쟁
보낸이:공병우(Kongbw) 1994-02-01 13:51 조회: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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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살리기 위한 나의 또다른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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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병우 (한글 문화원장)

한글을 살리기 위해 내가 과거에 실천한 몇 가지 투쟁 이야기
를 말하고자 한다. 한글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한글을 살리는 지름길이라 믿는다.

1. 1991년의 일로 기억한다. 해마다 '동아연감'의 부록으로
나오는 '동아 인명록'을 발간하는 곳에서 나의 이력을 적어 보내
달라는 요청서가 왔다. 나는 한글만으로 이력을 적어 보내면서, 먼 훗날에 젊은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만으로 인명록에 올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해마다 한자혼용으로 올려지던 내 이름이 그 해의 동아연감 인명록에는 쏙 빠져 버렸다. 그 이듬해에 또
요청서가 왔기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글만으로 적어 보내면서
한글만으로 공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내 나의 고집이 받아들여져 한글만으로 나왔고 그 이듬해에도 역시 한글만으로 기록되어 나왔다.

아울러 나는 1993년 판 동아연감 인명록에서 평소 한글을 사랑
하고 한글만 쓰기에 앞장서는 분들의 이름이 모두 한자로, 이력
내용도 한자혼용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 사실은 한글을
사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한글을 살리기 위한 투쟁에 철저
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에 견주어 금 수현 님의 이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아연감
인명록에 한글만으로 실려 왔었는데, 그것은 해방 후 김 수현을
금 수현으로 성을 바꾸고 한글로 이름을 써 왔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나는 금 수현 님이야말로 진정 한글을 사랑하면서 실천을 하신 분이며 위대한 선각자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얼마동안 이 사실을 모른 채 연감 인명록에 내
이름만이 한글로 기록되어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을 하였지만, 이미 오래전에 한글만으로 써 오신 금 수현 님을 알고 나서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2. 우리나라 통일원에서, 북한 친척 방문 희망자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북한 방문을 허가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신청서를 제출했
다. 그 후 어느날 통일원 직원이 전화로 나의 한자이름을 질문하기에 나는 한자 이름이 없다고 대답했다. 한자이름이 없으면 북한에 갈 수 없다고 말하기에, 나는 북한을 못 가더라도 이미 버린 한자 이름을 다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지 수 주일 후 북한을 방문해도 좋다는 허가서를 받았다. 통일원 허가는 받았지만,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가지 못하고 일본이나 홍콩을 경과하여야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제 나라 땅을 밟아 가겠다는 고집으로 오늘날까지 가지 못하고 있다. 남의 나라 땅을 밟아야만 북한을 갈 수 있는 비극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이런 비극의 근본 원인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우리 민족의 가장 강한 무기인 한글을 천대만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3. 1993년 "한국발전"이란 계간지를 발행하는 "한국발전 연구원"
에서 나에게 원고 청탁을 위한 규정을 인쇄한 원고 청탁서를 보내왔는데, 그 청탁서에는 원고 제목과 원고 장수 제한, 원고료 등이 기록되어 있고, 원고는 한자를 25% 이상 넣어 달라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인쇄된 청탁서로 미루어 보아 이 한자 혼용 요구 조항은 창간할 때부터 편집 방침으로 일관해 온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원고 쓰기를 즉각 거절했다. 그 후에 다시, 한글만으로 써도 좋다는 부탁이 와서 원고를 써 보냈더니 그 해 봄호에 한글만으로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 계간지를 만드는 분들은 한자혼용이 한국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이 계
간지에는 한글을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글들도 많이 실려 있었
다. 그러나 이 분들의 글 중에는 한자혼용이 있었다. 한글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서도 막상 실천에서는 한자혼용으로 한글을 천대하고 한글전용에 걸림돌 구실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4. 1960년 대에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신동아와 같은 이름난
월간지나 신문사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내가 한글 타자기로 글을
써서 보내면 거의 모두가 200자 원고지에 다시 써 보내 달라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소학생들이 숙제를 손으로 써 가면 교사가 받아 주지 아니한다면서, 타자기로 작성한 원고를 다시 펜으로 200자 원고지에 쓰라는 것은 미개한 처사라고 거절했다.

그런데 그 당시는 한글만으로 쓴 신청서를 시청이나 구청에
제출하면, 한자로 다시 써오라면서 받아 주지 아니했다. 그리고
은행에서는 자기앞수표에 금액을 한글만으로 써가면 한자로 다시
써오라고 거절했다. 그때 나는 한글을 천대하는 사람은 비애국자라고 언쟁까지 했다. 상대방은 나에게 한자를 알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대꾸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사필귀정으로 모두 한글만으로 쓰게 되어 나의 주장이 승리했다.

그렇지만 달나라 여행을 하게 된 오늘날, 아직 200자 원고지
00장으로 원고를 요청하는 잡지사와 신문사가 대다수인 것을 보고,
우리 나라 글자생활은 아직 원고지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미개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문필가 대다수가 기계로 원고
를 쓰지 못하고 200자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나라가 기계문맹을 벗어나지 못한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배우지 않고 손쉽게 한글을 찍을 수 있는 3벌식 타자기가 대중화되어야만 200자 원고지가 없어질 것이다. 타자기의 대중화로 원고지가 없어지는 날이 오기 전에는 신문, 공문, 명함, 명패 등에서 한자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글을 진정 사랑한다는 분들이 한글을 천대하는 일이 수두
룩하다. 두어 가지 예로 한자로 이름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타
자기도 사용할 줄 모르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글을 죽이는 2벌식 기계와 컴퓨터를 사용하는 분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한글을 해치는 일이 무엇인가를 한글을 사랑하는 분들이 먼저 깨닫고 실천하기 전에는 원시적인 200자 원고지 생활에서 벗어날 수도 없기 때문에 한글도 나라도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94. 1. 31.



제 목: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보낸이:공병우(Kongbw) 1993-11-16 18:34 조회:69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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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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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은 40연이란 긴 세월을 덤으로 살고 있기 때문-

공 병우(한글 문화원장)

사람은 기쁨과 슬픔을 번갈아 가면서 살게 마련이다. 내 나이
88세가 된 지금, 나에게 가장 기뻤던 일은 8ㆍ15 해방을 맞이하던
때이고, 반대로 가장 큰 비극은 625 전쟁 때 겪은 고통이다.
6ㆍ25 전쟁 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나는 한 공산군 군의감의 증언
덕분에 죽지 않고 지금까지 43년이란 긴 세월을 덤으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덤으로 살고 있으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점에서 기쁨과 행복한 마음으로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다.

1. 민족의 번영과 국가흥망을 죄우하는 한글 과학화 운동을 한
결과, 나의 '3벌식 글자판'이 과학적이고 능률적이란 사실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보급과 계몽에 솔 선 나서는 애국정신을 가진 분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일 죽어도 내가 심어놓은 3벌식 한글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3벌식 한글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난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문명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내가 한글 타자기로 3벌체 글씨꼴을 최초로 만들었을때, 글씨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가 거부감을 가졌다. 나는
3벌체의 과학성은 내가 죽어 50년 이상 지나야만 실용화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은 세계적인 한글
을 500여년 동안이나 천대만 하고 있으니, 3벌체의 과학성 또한 쉽게 깨닫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신문, 간판, 출판물 등에서 널리 3벌체 글씨꼴들을 실용하고
있는 것을 본 나는 뜻밖에도 살아서 나의 3벌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사실을 보고 무척 기쁜 마음으로 눈을 감게 되었
다.

3. 천재전문 교육가이신 변 영애님의 저서인 “천재가 되려면 웃는
법부터 배워라”라는 책에서 영애님은 천재 본보기로 리차드
훼인만,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부처님, 김소운, 공병우,
전혜린 등 6명을 뽑았는데, 그 중 나만이 살아있다. 내가 살아서 이런 책을 읽고 죽게 된 것을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4. 나는 10여년 전에 팔도강산 구경삼아 사진을 5년 동안 찍었다.
금년 정월 '한국사협'이란 월간지에, 전주에 계시는 권진희님이 나의 사진에 대해 쓴 긴 글이 실렸다. 사진은 세계적으로 발전
하고 있는 과학이기 때문에, 내가 죽은 후 10년 정도 지나야만
이런 나의 사진에 대한 평론이 공개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살아서 나의 사진 평론을 읽게 된 것을 무척 기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나는 오늘 생각한다. 내가 만일 돈을 위주로 안과병원을 운영했다든가, 고성능 타자기를 개발한 일이 없었다든가, 공산당 위조지폐 사건 때 허위 진단서를 썼다든가, 3주일 동안 정치보위부에 있을 때, 번민과 고통을 못이겨 지조를 버리고 남들과 같이 허위 자술서를 썼더라면, 나는 그 당시 정치범으로 총살을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나의 지조를 생명처럼 지켰기 때문에 죽지 않고 지금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은 돈보다 더
소중한 사랑을 위해 정직하고 정의롭게 노력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빛나는 생명의 축복을 받는다고 확신한다.<> (1993.11.17.)

한글 문화원 서울 종로구 와룡동 95 우:110-360
전화:744-3268, 전송:742-9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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