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병우 상 제정에 필요한 자료 문건과 공 박사님 추모의 글을 올리는 방입니다.

105  5/9 모람되기 들어가기
이 대로 2002년 09월 04일 15시 45분에 남긴 글입니다.
내가 만난 사람 - 월간 동아 1991.1

아래 글은 글쓴이가 월간지 여성동아에 썼던 글입니다. 여성동아에서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분 중에 존경하는 분이나 기억 남다르게 남는
분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 와서 공박사님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 글을 보신 공박사님께서 "나를 과학자라 말한 사람은 이선생 뿐이
요"라면서 좋아하셨다. 님은 스스로 과학자라 생각하셨고 우리 나라
의 과학 수준이 낮은 것을 안타까워하셨다.

----------------------------------------------------------------

내가 만난 사람

1. 내 식대로 살아 왔다는 공병우박사

누구나 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자기에게 기쁨을 준 사람도
있고 괴로움을 준 사람도 있으며 아무 뜻없이 스처간 사람도 많다. 농촌
운동과 국어 운동의 길이 내 인생길인 줄 알고 살아온 지난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길에서 훌륭한 선생님들과 좋은 선후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보람있고 뜻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낌으로써 내 삶에 큰 도움이 되
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병우 박사님을 만난 것은 큰 영광이고 기쁨이다.
내가 처음 공 박사님을 알게 된 것은 23년전 국어운동 대학생 활동을 시
작할 때 우리 모임의 유인물을 공병우 타자기회사에서 타자해 주셨기 때
문이다. 그 때 우리는 국어사랑의 정신과 중요성 들 많은 유인물을 만들
어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뿌리기도 하고 각 기관에 보내기도 했는데 그 대
부분을 수 년 동안 공병우 타자기회사에서 타자해 주었다. 그 때 우리뿐
아니라 한글학회 등 여러 모임들도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런데 군사정권의 잘못된 정책과 탄압으로 우리 학생 국어운동도 위축
되고 공병우 타자기회사도 기울었으며 정부와 싸우다 지친 공 박사님은
미국에 가셔서 돌아오시지 않고 고국의 민주화 운동과 한글 문화운동을
하고 계셔서 뵐 수 없다가 1988년 민주화 바람이 불고 우리 국어운동 대
학생 동문회도 다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공 박사님도 귀국하여 한글 문
화원을 차리시고 활동을 다시 하시게 되어 우리는 공 박사님을 다시 만나
또 많은 도움과 지도를 받게 되었다.

나는 1988년 11월30일 공 박사님께서 귀국 하여 여생을 한글 문화 운동
에 바치기로 하셨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인사차 전화를 드렸더니 반가워
하시며 곧 만나자고 하셨다. 그 뒤 나는 공 박사님을 자주 뵙고 국어운
동에 대한 의논도 하고 한글 기계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공 박사
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박사님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2.시간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공병우 박사님

공 박사님은 1906년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태어나셨다. 보통 사람은 10
달만에 태어나는 데 공박사님은 8달만에 태어나 학교 교육도 졸업장 받
는 학년을 모두 월반하고 검정시험으로 대학까지 진학했으며 4년 이상
걸리는 의학 박사 학위도 2년만에 따신 분이다. 남보다 빨리 태어나 바
쁘게 공부하신,졸업장이 하나도 없는 남다른 의학박사이시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안과 전문 병원을 개업하셨고 일본어로 된 시
표를 한글로 바꿔 보급하셨고 일제가 강제로 창씨 개명한 자신의 이름을
호적에서 지우기 위해 '공병우 사망'이란 전보를 고향으로 친 분이며,광
복후 자신이 일본어로 쓴 안과 교재를 한글로 번역하시다가 편리한 한글
타자기의 필요성을 느끼시고 한글의 특성을 잘 살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3벌식 한글타자기를 발명,보급하셨다.

맹인 등 장애자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하셨고 돈 잘버는 의사일은 '내
가 안해도 세계의 추세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지만 한글은 우리가 살리지
않으면 영원히 천대만 받을 것이다'시며 병원일은 제처두고 한글 기계화
연구와 한글 전용 운동에 많은 정렬과 시간과 돈을 바치셨다.

넥타이 매는 시간이 아깝다고 매지 않고 신사복 대신 몸에 편리한 옷차
림을 좋아하는 검소한 분이다. 1953년 미국에 처음 다녀오실 때 가족에
게 줄 선물 대신 장님들을 위한 흰지팡이만 잔뜩 사가지고 왔으며,자식
들에게 용돈주는 것은 인색하시고 기독청년회와 한글학회엔 많은 재물과
땅을 기부하셨다.

민족문화를 고도로 발달시킬 수 있는 연모인 한글을 두고도 활용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국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자나깨나 한글 기계화를 생각
하신다.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데 나이 들어감을 아쉬워하시며 85살의
나이에도 출퇴근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연구에
몰두하고 계신다.

오늘도 신문이나 책에서 좋은 글을 보시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
무실 앞에 복사해 놓아 여러분이 마음대로 가져다 볼 수 있게 하시는 분
이며 국내 처음으로 콘텍트렌즈 개발,맹인용 점자 개발,한글 워드프로세
서 개발 등 많은 업적으로 대통령 표창과 훈장도 받으셨고 국전에서 사진
작가로 입선도 하고 사진전도 열고 자서전도 내고 컴퓨터 글쓰기에 열심이
시다.

3.본 받을 점이 많은 이 시대 한국사람의 모범상 공 박사님

요즘 공 박사님을 찾는 기자 등 손님도 많고 모르는 사람한테 편지도
많이 온다. 그런데 한문으로 된 명함을 내놓는이에겐 용건을 듣기 전에
한글 사랑과 기계화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하시고 한글을 쓰지 않는 것
에 대한 꾸중 겸 호소를 하시는 바람에 손님이 당황하는 일이 있고,한
문을 펜으로 섞어 쓴 편지는 싫어하고,타자기나 컴퓨터로 쓴 글을 보시
면 반가워하신다. 이렇게 자기 주장이 뚜렷하시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말이나 몸짓은 안하시기 때문에 좋은 일 하시고도 제 대접을 못받는 일
이 있어 가족들로부터 처세술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사기도 하신다.

그러나 공 박사께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깨닫고 앞서가는 데서 오는 오
해요,부작용이다. 공 박사께선 자기식대로 자신만을 위해 산 것 같으나
모두 남을 위해 산 이 시대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분이며 몸은 80대 어르
신이지만 마음과 행동은 20대 젊은이 같으시다.

수십 년간,수 많은 나라 돈을 쓰고 지위와 권력을 누리면서도 한글 기계
화는 못하는 정부관리들에 비하면 안과는 외국인이 발전시킬 수 있지만
한글기계화는 한국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시며 한글 과학화가 당신
의무로 알고 자신과 가정도 돌보지 않고 애쓰시는 모습은 한글 창제하신
분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말로만 애국하고 실제 힘동은 자신과 자기 패거리의 이익만을 위해 싸
움이나 하는 정치인들과 한글 전용을 국책으로 정하고도 4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시행아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정
부 관리들에 비하면 말없이 행동으로 한글을 살려서 나라를 키우겠다고
땀흘리며 한글 기계화 연구에 몰두하시는 백발 노인의 모습은 거룩한 희
생정신이고 큰 애국심이시다.

조금만 이름이 나도 거드름 피고 돈 좀 있다면 멋내고 낭비하는 세상인
데 언제나 검소한 옷차림에 부지런히 일하는 생활태도며,힘센 남의 나라
나 권력자에 아부하고 떠받들거나 시대 유행과 못된 풍조에 따르지 않고
오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는 분,신념을 가지고 사는 주체정신,
남을 돕는 희생정신,졸업장이나 지위보다 실력을 중요시 하는 정직한 정신,
연구 개발에 몰두하는 과학 탐구정신,죽는 날까지 배우고 공부하는 평생
교육 정신 들은 한국병을 치료하는 치료약이며 온 국민이 본받고 따라야
할 분이다.

공 박사를 어떤이는 이름난 안과 의사라 하고 또 어떤이는 고집쟁이라
하고 또 어떤이는 한글운동가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분이
한글 고속타자기도 만들고 여러가지를 발명한 과학자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성직자 못지 않은 고귀한 삶을 사신 성인으로 부르고 싶다. 80이
넘으신 어르신이 환하게 웃는 모습은 간난아기의 깨끗한 웃음이 떠오르게
한다. 그 만큼 그 분 마음과 삶이 어린이처럼 깨끗하고 올바랐다는 것이
웃음에 떠오른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겐 존경하고 따를 만한 인물이 없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분에게 공 박사님을 자신있고 추천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리 이름난 분이라도 이렇게 칭찬하고 좋아해본 일이 없다. 처세술은
모자랄지 모르나 너무나 순수하고 참된 생활 모습이 감동스럽고 바람직스
러워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내게 한글 기계화를 눈뜨게 하고 참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신 박사님이 요즘 건강이 안좋으시다고 하여 걱정이
다.새해엔 박사님의 소망인 한글 기계화와 남북통일과 고향 방문이 이루어
지고 건강이 회복되시길 두 손 모아 빈다. 공 박사님의 소망이 우리 모두
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1991.1.15]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신의키스

지음권㉨1967-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