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병우 상 제정에 필요한 자료 문건과 공 박사님 추모의 글을 올리는 방입니다.

105  8/9 모람되기 들어가기
이대로 2000년 05월 22일 12시 28분에 남긴 글입니다.
나의 일생을 좌우한 작문 이야기 - 공병우님 글

제목:나의 일생을 좌우한 작문 이야기 1/7
보낸이:공병우 (Kongbw ) 1993-11-20 13:37 조회:723
───────────────────────────────────────
나의 일생을 좌우한 작문 이야기
++++++++++++++++++++++++++++++
* 독서는 성공의 어머니*

공 병우(한글 문화원장)

글자는 인간이 가진 무기중에서 가장 간한 무기이다. 그러므로
글자가 바탕이 되는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는 사람은 성공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독서가 단순히 지식을 넓히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이 올바른 판단과 실천의 바탕이 되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제시대 때, 나는 보통학교 5학년을 마치는 해, 장차 의사가
되겠다는 뜻을 가지고 '신의주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시험을
보았지만 낙제했다. 보통학교에서 잡지를 읽는 데만 골몰했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들은 공부를 하지 아니한 탓으로 낙방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압록강 강변에 있는 3년제 '의주농업학교'에 무시험으로 들어갔다. 그 학교를 졸업해도 고등 농업 학교에 입시 자격도 주지 않기 때문에 졸업 후 집에 돌아가서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면서기나 군서기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로 갈 생각을 가지고 당시 일본 동경에서
발행하는 <시험과 학생>이란 잡지와 서울에서 발행하는 <경성일보>
라는 일본말 신문을 날마다 읽었다. 때문에 1학년 성적은 꼴찌를
겨우 면하고 2학년으로 올라갔다.

세월은 흘러 어느새 2학년 2학기가 되었다. 늦은 가을철 어느날, 작문 담당인 '와다나베' 선생께서 우리 2학년생들에게 각자 자유로운 제목으로 작문을 지어 내라고 했다. 나는 <농업학교와 나의 희망>이란 제목으로 작문을 썼다. 기숙사의 식생활은 감옥 죄수들의 것과 다름이 없고, 학생들을 감언이설로 중노동을 시킨다는 등, 심지어는 교육자로서 관존민비를 강조하는 교장 선생의 태도가 매우 유감스럽다고까지 언급했다. 교장선생은 60세 가량 되는 노인으로 키가 크고, 눈도 크고, 수염도 많고, 풍채가 매우 좋은 '고마쓰'라는 분이었다.
만일 교장선생께서 나의 작문 내용을 알게 되면 퇴학을 맞을 것이라 생각되어, 작문샌생에게 바칠까 말까 몹시 망설이다가 퇴학을 당해도 좋다는 결심 끝에 그 작문을 냈다.

작문을 낸 지 1주일이 지나고 다음 작문 시간이 돌아왔다. 작문
선생은 우리들에게 나의 작문을 큰 소리로 멋지게 낭독한 다음, 말하기를 “너희들의 작문은 모두가 가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고 어쩌구 남의 글 흉내를 낸 글들이다. 그러나 공군의 글은 살아있는 호소력이 있는 작문이다. <압록강 일보>에 발표할 터이니 그때 다시
꼼꼼이 읽어 보아요”하고, 작문을 각자 자유 제목으로 또 지으라고 말하고 교실을 나갔다.
작문 시간이 끝나서 알고 보니 '와다나베'선생은 나의 작문을
1학년과 3학년 교실에 가서 수업중이던 선생을 교단에서 내려오게
하고 자신이 올라가, 나의 작문을 멋지게 각각 낭독을 하고 나서는, 교장 선생 이하 전교직원이 앉아 있는 직원실에서 큰 소리로 또
읽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나는 곧 기숙사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버렸다. 과거에도 두 번이나 퇴학을 맞을 뻔하고 용서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퇴학을 면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니, 각오는 하고 용기를 내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퇴학을 당하게 되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퇴학을 하고 집으로 가면 아버님께 야단을 맞을 생각으로 근심걱정이 태산 같았다. 자리에 누운지 3일째 되던 날 저녁 7시에 교장 사택으로 오라는 호출을 받고 일어나 사택으로 갔다.
나는 퇴학을 각오하고 가서 교장 선생님 앞에 꿇어 앉아 사과의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뜻밖에 교장 선생은 무섭게 화를 내거나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대하면서 진심어린 사랑으로
나를 의사가 될 수 있는 길로 나가도록 갈 길을 알려 주시며 지도해 주셨다.
나는 '와다나베' 선생과 교장 선생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평양
도립 의학 강습소>로 가서 의사가 될 수 있는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만일 그때 교장 선생이 감정을 앞세워 나를 퇴학시켰더라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면사무소의 서기나 시골 농사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학시절에 있었던 나의 작문은 나의 평생의 운명을 열어주는
열쇠 노릇을 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와다나베'선생께서 나의 작문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는 데 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라 해도 공개를 해 주지 않으셨다면,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또 내가 퇴학을 맞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작문 제출을 포기했더라면 내 운명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도 생각해 본다.
두 분의 훌륭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에 나의 운명이 열리게 된
것이다. 지금은 나의 작문보다도 몇 배 더 중요하고 훌륭한 글을
써 놓아도 반응이 없으니 한심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의 운명을 결정한 작문은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진리의 말이 있다. 나는 중학시절의
체험으로 이 격언의 뜻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가 본직을
버리고 반평생 동안, 한글 과학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은, 세계에 둘도 없는 한글을 500여 년동안 천대만 하다가 나라가 망하기까지 했는데도, 이를 반성하지 못하고 여전히 한자와 2벌식 기계들로
천대를 하고 있는 것이 하도 안타깝고 한심한 마음에서 한글을 더욱 강한 무기로 발전시켜, 우리가 세계 선진국 대열에 자랑스럽게 앞장서는 힘의 바탕을 삼자는 데 그 뜻이 있다. <> (1993. 11. 16.)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신의키스

지음권㉨1967-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