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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2014년 08월 19일 16시 17분에 남긴 글입니다.
우리 겨레 이름 짓기 역사

삼국시대

삼국시대엔 주로 왕족들을 비롯하여 중국에 왕래한 사신들과 유학자, 장보고와 같이 무역을 한 사람들 정도만이 씨(성)를 썼다. 한편 고구려의 ‘주몽(활 잘 쏘는 사람)’, ‘연개소문’, ‘을지문덕’, 백제의 24대 동성왕 때까지의 왕 이름, 신라의 ‘박혁거세(밝은 분, 밝은 누리)’, ‘유리니사금(치아가 많은 임금)’, ‘탈해(알을 토한 분)’, ‘거칠부(거칠마로 : 용감한 지도자)’, ‘원효(비롯)’ 등이 나타난다. 이들은 우리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향찰 따위의 차자(한자빌어적기) 표기로 전해진다. 금석문,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자료와 기존의 여러 연구를 종합해 보면, 이 시대엔 지배 계층 대부분이 우리말이름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다른 계층도 그렇게 추정되며 차자 덕분에 복원도 가능했다.

* 마리, 누리, 수리, 부루, 미루, 해루, 발기, 불그리, 오롬, 웃지, 웃도지, 잇둥, 실보, 소나, 웃나, 웃도, 웃쇠, 개쇠, 웃불, 새불, 가루, 해루, 고비, 아호리, 누리쇠, 마리한, 누리마로, 잇기마로...


고려

삼국의 지배 계층 대부분은 순우리말로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신라의 봉건 사대주의 계층을 중심으로 시작된 ‘한자어로 이름 바꾸기’는 고려에서 주자학 등 중국의 학문과 과거 제도 등의 문물이 많이 들어와 일반화되었고, 그것들이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상류 계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민중은 여전히 우리말로 이름을 지었다.
    

조선 (훈민정음 창제 이후)

사리영응기(1449년),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노비보(1745년) 외 다른 여러 고문서를 살펴보면, 조선조의 대부분 백성이 신분에 아랑곳 않고 우리말이름을 썼다.

막동·올마대·검불·망오지·구디·수새·실구디·쟈근대·북쇠·은뫼·‘走叱同(주질동)’‘竹伊(죽이)’박시다녜·니시긋뎡·김시긋셤·심치슈·윤시녜향·뉴시오월·원시운·이냥위·송시슉향·최시만녜·신시응·江阿之(강아지)·揷士里(삽사리)〕也之(도야지)··馬牙之(마아지)·夢牙之(몽아지)·加莫伊(가막이)■路未(두로미)·巨墨介(거묵개)·古邑丹伊(곱단이)·立分德(입분덕)·於汝非(어여비)·入分伊(입분이)·古孟伊(고맹이)...


일제강점기

이 시기에는 한자를 쓰는 일본의 영향으로 ‘간난이(干蘭, 簡瀾, 干蓮, 干郎, 干洛)’·‘아기(阿基, 阿只, 牙己, 岳伊, 愛基, 阿低)’·‘언년(어린년, 言年, 言連, 言蓮, 彦年, 彦連, 焉年)’·‘음전이(巖全, 奄全, 音全, 音田, 陰田)’ 복이(福伊)·선이(仙伊)·홍이(弘伊) 등 ‘이(伊)’자를 가진 이름이 53개나 되는데, 그 가운데 세 개만 남녀공용이고 나머지 50개는 모두 여자 이름이다. 또 이 시기와 8·15 광복 전후에 태어난 여자의 이름에 영자(英子)·춘자(春子)·옥자(玉子) 등 ‘자’자 이름이 많은 것은 모두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940년 2월부터, 일제는 우리 겨레 고유의 성명제를 폐지하고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강제 시행했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이 일본식 한자이름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광복 1년 뒤인 1946년 ‘조선성명복구령’에 따라 일제가 강요한 창씨개명이 무효화됨으로써, 우리 국민은 본래의 성과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그 결과 ‘이’나 ‘자’자의 안이한 작명법을 벗어나 뜻이나 소리가 아름다운 글자를 찾아 자유로운 변모를 거듭했는데, 희(姬)·숙(淑)·옥(玉)·정(貞)·순(順)·미(美)·연(娟)·주(珠)·혜(惠) 따위의 한자이름들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국권 회복과 함께 자주 의식 또한 강해진 일부 뜻 있는 사람들은 다시 예전처럼 우리말이름을 지어 쓰고 호적에도 올렸다. 대한민국 호적에 등재된 최초의 한말글이름 ‘최 참도(1946. 3. 4.생)’를 비롯해서, 1967년부터 시작한 서울대학교 학생 동아리 ‘국어운동학생회’가 연례행사로 마련한 ‘고운이름자랑하기’가 우리 사회에 한말글이름 짓기 바람을 일으키면서, 그 첫 번째 행사에서 음악가 금 수현의 네 자녀 ‘난새-내리-누리-노상’ 남매가 으뜸 이름으로 뽑혔다. 그 밖에 한글이름펴기 모임과 한글학회도 한말글이름 지어 쓰기 운동을 벌였다.

재판을 통해 호적의 한자이름을 한말글이름으로 바꾼 최초의 사람은 ‘밝(박) 한샘(1979년 개명)’이며, 최고령자로서 한자이름을 우리말로 바꾼 사람은 ‘최 햇빛(1985년 개명, 당시 75세)’이고, 최연소자는 ‘김 슬옹(1983년 개명, 당시 21세)’이다. 또한 호적의 한자이름에서 한자만 떼어버리는 개명 방식을 시도하여 법원으로부터 처음 승인된 사람은 ‘이 봉원(2007년 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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