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글마당'에 올린 글(자료)들 가운데서 따로 널리 소개할 만한 것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가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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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2014년 10월 30일 10시 57분에 남긴 글입니다.
꼭지1 한말글_현대사_20141015.doc (167.0 KB)   받음 : 2
한말글 현대사 (좋은메 정리)

* 2014. 7. 까지의 역사 기록입니다.


한말글 현대사

● 어제를 적은 이 생각

시간이라는 역사가 흐른다.

훈민정음을 처음 만든 1443년부터 살아오지 못한 까닭에 한말글에 관한 역사를 하나 하나 찾고 적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 앞서 산 선배님들이 정리한 역사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이러한 끈을 놓치지 않고 모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이 대로 선생님이 하이텔 한글사랑 다솜에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과 규정 소개(1996. 5. 28.)’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일반 국민들 뿐 아니라 공무원들도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과 규정을 잘 모르고 있어 아래에 소개하렵니다. 국어순화추진회에서 엮은 [우리말 순화의 어제와 오늘=1989. 미래문화사]란 책에 서울대 이 현복 교수께서 쓴 글 가운데서 간추리고 제 생각을 보탰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고 도와주고 따라 주길 바랍니다.“

모두 아는 사실을 몇 줄의 글로 정리를 했으니 잘 활용 해 달라는 뜻이다. 나 또한 ‘한말글 현대사’를 통해서 우리 말글의 역사를 넓고 긴 - 올바른 눈으로 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여기에 적은 날짜에 논란이 있겠으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몇 가지 역사만 빼고 조선 고종 33년, 1896년 1월 1일 이전에는 모두 음력으로 기록을 했고 나도 그것을 따르기로 했다. 이걸 양력으로 셈을 하려면 대부분의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셈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셈을 하면 복잡할 뿐 아니라 할 필요가 없어서이다. 다만, 앞으로 하거나 하고 있을 ‘한말글 오늘’ 정도의 꼭지에는 음력과 양력에 관계없이 양력 기준으로 담아 둘 생각이다.

이 글은 엠에스 워드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HanmalgeulHyeondaesa)에 만들었다. 워드로 만들어 놓은 것은 출력해서 볼 수 있게 만들었으나 참고 자료를 함께 실으면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참고 자료를 뺐고, 페이스북으로 만든 것은 누리그물(인터넷)에서 보면서 참고 자료도 함께 편하게 볼 수 있게 하였다.

‘한말글 현대사’는 계속 기록 해 나갈 생각이다. 한 개인이 우리 말글에 관해 가지고 있는 배움, 자료, 정보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한말글 현대사’에서 빠지거나 틀린 곳이 있으면 언제라도 도움을 주고 꾸중을 해 주길 바란다.

2002년 2월 3일 처음 적고, 2014 년 10월 15일에 조금 고침.


1998년  6월  6일 처음 적음.
2000년  5월 23일 처음 고침.
2000년  7월 30일 두 번째 고침.
2002년  2월  3일 세 번째 고침.
2002년  2월 12일 세 번째에서 처음 조금 고침.
2002년  3월 17일 세 번째에서 두 번째 조금 고침.
2002년  4월  1일 세 번째에서 세 번째 조금 고침.
2013년  7월  3일 네 번째 고침.
2014년 10월 15일 다섯 번째 고침.


펴낸 곳: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http://www.hanmalgeul.org)
어제를 적은 이: ㅈㅇ-ㅁ 좋은메 조 상현(joeunmei@hanmail.net)

● 지음권 알림

1. ’한말글 현대사’는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www.hanmalgeul.org)’ 안에 있는 작은 연구소에서 만든 자료이며, ’한말글 현대사’와 ’한말글 오늘’의 지음권은 모두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에 있습니다. 다음 부터, ’한말글 현대사와 ’한말글 오늘’은 따로 나누지 않고 ’한말글 현대사’로 적겠습니다.

2. ’한말글 현대사’에서 보여 준 모든 자료는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로, 허락없는 베끼기, 옮기기일 경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저작권법 제16조 복제권, 제20조 배포권)

3.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에서’에서 직접 베끼거나 자료를 나누거나, 옮긴 내용이 아닌, 이용자, 관련 기관, 단체에서 제공하는 내용은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은 이용자, 관련 기관, 단체에서 제공하는 내용에 대한 저작권 침해 방지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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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영리가 아닌 영리 목적으로 쓸 때는 미리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에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2014년 10월 15일 처음 적음

한말글 현대사

● 1397년 5월 15일
세종 큰 임금 태어남. 1963년 청소년 적십자사 중앙 학생 협의회(J.R.C.)에서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사은 행사를 했다가 1965년부터 세종대왕의 생일인 5월 15일로 바꿈.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방침에 따라 없앴다가 1982년 다시 만듦. 최근 스승의 날을 졸업 때인 2월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음.

● 1420년 3월 16일
세종 2년,
세종 큰 임금, 왕실연구기관 집현전 설치. 집현전에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고려사>, <농사직설> 등 출간.

● 1443년 12월 30일
세종 25년,
훈민정음 만듦.

● 1445년 3월 8일
세종 27년,
용비어천가 완성.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는 조선 창업을 칭송한 것으로 시가와 고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1446년 10월 9일
세종 28년,
훈민정음 반포.

● 1450년 2월 17일
세종 32년,
세종 큰 임금 세상 떠남. 1397~1450. 재위: 1418~1450
{한글 학회} 자료: 세종 대왕

● 1527년 4월 20일
중종 22년,
최 세진 <훈몽자회> 편찬.  한글 자모의 이름을 처음 정하고 순서와 받침을 정리. 글자 수는 27자. (훈민정음 28자 가운데 ‘ᅙ’이 빠진 체계이고 닿소리와 홀소리의 이름과 순서가 오늘날과 같다.)

● 1600년 초
허 균(1569~1618),
최초 한글 소설 <홍길동전> 지음.

● 1876년 12월 22일
고종 13년,
한글 학자 한힌샘 주 시경(1876~1914) 태어남.

● 1891년
미국인 선교사, 육영공원 교사,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인 호머 베잘렐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년 1월 26일 ~ 1949년 8월 5일)는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士民必知)'를 간행했으며, 지구와 천문•기상 등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과 지구총론•인종총론 및 유럽 총론 등의 개론을 붙였다.
{위키백과} 자료: 호머 헐버트

● 1894년 10월 19일
고종 31년,
한글 학자 외솔 최 현배(1894~1970) 태어남.

● 1894년 11월 21일
고종 31년,
고종 칙령 제1호 공문식 14조
법률칙령, 모든 글은 국문(곧, 한글)을 바탕으로 하고 한문은 딸림으로 적되 다만, (필요하면) 국한문을 혼용해서 쓴다.
法律勅令 總以國文爲本 漢文附譯 或混用國漢

● 1895년 5월 8일
고종 32년,
고종칙령 제86호 공문식 제 9조
법률명령은 모두 국문으로 적고 한역(한문으로 번역하는 일)은 딸림으로 적되 다만, 국한문을 혼용함.
法律命令은 다 國文으로 本을 삼고 漢譯을  附하며 或 國漢文을 混用홈.

● 1896년 4월 7일
고종 33년,
최초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 서 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등록은 서 재필의 사유로 하였으나 실제는 조선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띄어쓰기를 한 한글 전용판과 영문판으로 창간되었다. 독립협회발족 뒤에는 그 기관지 구실을 하였다. 1957년에는 <독립신문> 창간일이 ‘신문의 날’로 제정되었다.

● 1908년 8월 31일
‘국어 연구 학회’ 창립.(회장: 김 정진) ‘국어 연구 학회’는 ‘배달 말글 몯음(1911.9.3.)’, ‘한글모
(1913.3.23. 회장: 주 시경)’, ‘조선어 연구회(1921.12.3.)’, ‘조선어 학회(1931.1.10.)’, ‘한글 학회(1949.9.25.)로 발전한다.
{한글 학회} 자료: 한글 학회 해적이

● 1914년 7월 27일
한글 학자 주 시경(1876~1914) 세상 떠남. 황해도 봉산군 무등골에서 태어난 주 시경은 배재학당과 이운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던 중 서 재필을 만나 국어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896년 4월 창간된 독립신문에 국문 전용과 띄어쓰기를 실천했으며 같은 해 5월에 조선문동식회를 조직했는데, 해방 뒤 한글 학회로 발전했다. 또 협성회와 독립협회 등에 참여해 국민계몽과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으며 <대한국어문법(1906)>, <국어문전음학(1908)>, <국문초학(1910)>, <국어문법>, <국문연구안>, <말의 소리> 등의 책을 지어 한글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은 뒤 보성중학교에서 조선어강습소를 열어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지병이 악화돼 38살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한글 학회} 자료: 현대 인물/주 시경

● 1921년 12월 3일
임 경재 최 두선 등 7여명, ‘조선어연구회’ 창립. 1931년엔 ‘조선어학회’, 1949년엔 ‘한글 학회’로 이름을 바꿈.

● 1926년 11월 4일
조선어 연구회(지금은 한글 학회)는 ‘가갸날’이라 해서 한글 반포를 기념. 그 동안에는 언문, 반절, 언서, 암클, 아햇글, 가걋글, 국서, 국문, 조선글 등으로 불리었다.
1926년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맞이하여 세종실록 28년 9월 조를 따라 9월 말일을 ‘가갸날’로 정해서 기념식(음력 9월 29일)을 올렸다. 1928년 11월 11일에는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치고, 1931년에는 음력을 율리우스력(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로 하다가 3년 뒤인 1934년에는 그레고리오력에 따라 다시 10월 28일로 정했다. 그러다 1940년 7월, 경북 안동의 한 집에서 훈민정음 반포 원본이 발견되어 그것에 근거해 10월 9일로 확정. 그 뒤 일본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뒤인 1946년 10월 9일이 한글 반포 500돌을 기념하여 한글날을 공휴일로 하였으나 1991년 노 태우 대통령부터 기념일로 되었다가 2005년 노 무현 대통령에는 국경일로, 2012년 이 명박 대통령에는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 대통령령 제 124호(1946.6.4. 제정)
- 국경일에 관한 법률. 법률 제 7771호(2005.12.29. 일부개정)
-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 24273호(2012.12.28. 일부개정)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 자료: 한글날 발자취

● 1931년 6월 19일
조 만식, 양 주동 등 한글 연구회 조직.

● 1932년 5월 1일
조선어 학회 월간 학술 학회지 <한글> 첫 호를 펴냄.

● 1933년 10월 29일
조선어 학회, ‘한글 맞춤법 통일안’ 발표.
{한글 학회} 자료: 자료 마당/한글 맞춤법 통일안

● 1937년 8월 30일
고등 보통 학교 과목에서 한문을 없앰.

● 1938년 4월 1일
일제의 ‘조선교육령 개정령’에 따라 조선어를 모든 학교 교과목에서 완전히 없앰.
{한글 학회} 자료: 한글학회 100년사

● 1940년 6월 25일
조선어 학회,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발표.

● 1942년 5월 1일
일제, 조선어 학회가 편 <한글> 93호로 폐간.

● 1942년 10월 1일
조선어 학회 사건.
1942년 10월 1일부터 1943년 4월 1일까지 사전 편찬 위원과 재정보조자 33명을 모두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를 적용하여 16명은 기소, 12명은 기소유예, 나머지는 석방하였다. 기소된 16명 중 이 윤재•한 징은 심한 고문과 추위•배고픔으로 옥에서 죽고, 장 지영•정 열모는 공소 소멸로 석방, 12명이 공판에 넘어갔다. 44년 12월부터 45년 1월까지 9차에 걸친 재판에서 이 극로 징역 6년, 최 현배 징역 4년, 이 희승 징역 2년 6월, 정 인승•정 태진 징역 2년, 김 법린•이 중화•이 우식•김 양수•김 도연•이 인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장 현식 무죄가 각각 선고했고, 광복으로 45년 8월 17일 모두 풀려 나왔다.
{한글 학회} 자료: 수난 시기/조선어 학회 수난을 당한 분들

● 1945년 9월 7일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부(사령관: 맥아더) 포고 제 1호 5조.
군사적 관리하는 동안에는 모든 목적을 위하여서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

● 1945년 9월 8일
조선어 학회(곧, 한글 학회)가 일제에 압수당했던 <큰사전> 원고,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

● 1945년 9월 29일
미군정법령 제 6호 4조.
조선 학교에서 교육 용어는 조선어로 한다.

● 1945년 10월 9일
한글날 첫 기념식.

● 1945년 12월 8일
미 군정청.
(1) 한자 폐지 여부에 관한 일.
① 초등,  중등 교육에서는 원칙적으로 한글을 쓰고 한자는 안 쓰기로 한다.
② 일반의 교과서에는 과도기적 조치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한자를 함께 써서 대조시킴도 무방하다.
③ 중학교에서는 현대 중국어 과목 또는 고전식 한문 과목을 두어서 중국과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교섭을 이롭게 하며, 또는 동양 고전에 접근할 길을 열어주기로 한다. 다만, 한자에 한하여 원문에 섞어 써도 좋다.
④ 이 ‘한자 안 쓰기의 실행’을 미끄럽게 빨리 되어가기를 꾀하는 의미에서 관공서의 문서와 지명•인명은 반드시 한글로 쓸 것(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만 한자를 함께 써도 좋음)을 당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기로 한다.
⑤ 위의 제 4조와 같은 의미에서 사회 일반, 특히 보도기관 문필가 학자들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
(2) 가로 글씨(횡서)에 관한 일.
① 한글을 풀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순전한 가로 글씨로 함이 자연적인 동시에 이상적임을 인정한다.
② 그러나, 이 이상적 가로쓰기를 당장에 완전히 시행하기는 어려우니까, 이 이상에 이르는 계단으로 오늘의 맞춤법대로의 글을 여전히 쓰더라도 그 글줄(書行)만은 가로(橫)로 한다.
③ 첫째 항목(項目)에서 규정한 이상적 순전한 가로 쓰기로 적당한 방법으로 조금씩 차차 가기로 한다.

● 1946년 6월 4일
정부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함.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 대통령령 제 124호(1946.6.4. 제정)

● 1947년 7월 24일
조선어 학회.
‘한글 전용법 제정 건의문’을 내고, 국회 78차 회의에 상정. 재석 131명중 86대 22로 가결.

● 1947년 10월 9일
조선어 학회.
<큰사전> 제 1권 발행.

● 1948년 10월 9일
법률 제 6호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 1949년 9월 25일
`조선어 학회`에서 `한글 학회`로 이름을 바꿈. `한글 학회`는 `국어 연구 학회(1908.8.31.)`, `배달 말글 몯음(1911.9.3.)`, `한글모(1913.3.23.)`, `조선어 연구회(1921.12.3.)`, `조선어 학회(1931.1.10.)` 로 발전했다.
{한글 학회} 자료: 한글 학회 발자취

● 1949년 10월 9일
한글 간소화 파동. (이 승만 대통령 담화문)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맞춤법 시행 방침과 관련하여 정부측과 학계•문화언론계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 1949년 10월 9일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현행 한글 맞춤법의 까다롭고 어려운 점을 지적, 발표한 담화문이 한글파동의 동기가 되었다.

● 1949년 11월 5일
‘교과서에 한자사용 건의안’을  국회에서  25명의 긴급 결의안으로 체택.

● 1953년 4월 27일
국무총리훈령 제 8호.
현행 철자법 폐지와 구식 기음법(記音法) 사용.

● 1954년 7월 3일
표기법 간소화 공동안. 문교부, 공보처.
(1) 받침은 끝소리에서 발음되는 것에 한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종래 사용하던 받침 가운데 ᄀ, ᄂ, ᄃ, ㄹ, ㅁ, ㅅ, ㅇ, ᆰ, ᆱ, ᆲ 등 10개만을 허용한다. 다만, 받침으로 사용된 때의 ‘ᄉ’의 음가는 ‘ᄃ’의 음가를 가지는 것으로 하고, ‘ᄃ’은 받침으로 아니 쓴다. (보기: 믿다 → 밋다 밋고 미더 미드니)
(2) 명사나 어간이 다른 말과 어울려서 딴 독립된 말이 되거나 뜻이 변할 때에 그 원사(原詞) 또는 어원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
(3) 종래 인정되어 쓰이던 표준말 가운데 이미 쓰이지 않거나 또는 말이 바뀐 것은 그 변화된 의대로 적는다.

● 1955년 9월 19일
표기법 간소화 공동안 폐지.
이 승만 대통령은 ‘민중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자유에 부치고자 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 1956년 10월 9일
이 승만 대통령은 한글 전용을 강조.

● 1957년 1월 29일
이 승만 대통령은 한글 전용을 다시 강조.

● 1957년 10월 9일
한글 학회.
<큰사전> (모두 6권)을 30년만에 완간.

● 1957년 12월 6일
한글 전용 실천 요강(국무회의의결 1958. 1. 1부터 시행)
(1) 공문서는 반드시 한글로 쓴다. 그러나 한글만으로 알아보기 어려운 말에는 괄호를 치고 한자를 써 넣는다.
(2) 각 기관에서 발행하는 간행물은 반드시 한글로 한다.
(3) 각 기관의 현판과 청 내 각종 표지는 모두 한글로 고쳐 붙인다. 특히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한자나 다른 외국어로 쓴 현판 표시를 같이 붙일 수 있되, 반드시 한글로 쓴 것보다 아래로 한다.
(4) 사무용 각종 인쇄 및 등사도 한글로 한다.
(5) 각 기관에서 사용하는 관인 기타 사무용 각종 인쇄물은 한글로 하고, 이에 필요 한 경비는 각부에서 부담한다. 관인 조처의 상세한 것은 따로 정한다.
(6) 각 관공서는 그 (관할)감독 밑에 있는 사사단체에 대해여도 위의 각 항목에 따르도록 한다.

● 1961년 12월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 개정 추진.
1962년 3월 부터 신문, 잡지, 기타 모든 간행물에 한글을 전용시키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개정이 무산 됨.

● 1961년 12월 29일
법원 공문서 규칙, 대법원 규칙 제 90호 공포.
제3조 (문서 형식). 모든 문서는 표준말인 한글 국어 체로 간명하게 기술하고 정자로서 가로 쓰되 띄어 쓸 것이며, 뜻의 전달이 곤란한 것은 괄호 안에 한자를 쓴다. 숫자 표시는 아라비아 숫자로 쓴다.

● 1962년 12월 20일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 70호로 등재.
{문화재청} 자료: 문화유산정보

● 1963년 7월 25일
문교부령으로 학교문법 통일안 발표. 중학교는 1965년부터, 고등학교는 1966년부터 시행하기로 함.

● 1965년 2월 24일
정부 공문서 규정, 제 7조 문서용어, 대통령령 제 2056호
문서는 한글로 띄어서 가로 쓰며, 표준어를 사용한다. 다만, 법규 문서는 뜻의 전달이 곤란한 경우에 한하여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서 쓴다.

● 1965년 11월 28일
한글 전용에 대한 법률 개정(안) 발표

● 1967년 3월 16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국어운동 횃불 점화식"이라는 이름으로 학생 17명과 허 웅 교수, 신 익성 교수, 한글학자 한 갑수, 한글운동가 문 제안이 참석한 가운데, ‘국어운동학생회’를 창립하는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국어운동과 한글운동을 펴기 위해 단체를 만든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자료: 추억거리/..몇 가지 기록

● 1967년 5월 8일
서울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가 한말글 이름 펴기 운동의 하나로 시행하는 첫번째 ‘고운 이름 뽑기’ 행사의 시상식이 문화방송 공개홀에서 있었다. 한말글 이름을 운동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펴기 시작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 1967년 10월 9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세 대학이 공동으로,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을 채택하고 한글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사진으로 고발하는  전단 10,000장을 만들어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또한 이날 서울대에서는 한글전용과 국어정화에 대한 표어 모집 시상식을 시민회관에서 열고, 인쇄한 표어 57,000장을 전국에 배포했다. 이 때 대통령께 보낸 건의문이 정부로 하여금 적극적인 한글정책을 수립토록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자료: 해적이/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

● 1967년 11월 16일
박 정희 대통령이 국무총리 정 일권에게 보낸 편지.
(1) 한글 완전 전용을 최종목표로 한다.
(2) 한글 전용을 즉시 시행과는 달리 연차적으로 계획을 세워 한자를 절감하겠다.
(3) 이 한글 운동은 ‘운동’으로 전개하지 어떤 법적 강제조치로 하지 않는다.

● 1968년 3월 14일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안 발표.
문교부: 현재 상용 한자 1,300자를 오는 1969년까지 700자로 줄이고, 그 후 초∙중∙고∙대학 순을 한자를 줄여, 1972년까지 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모두 없앤다.
공보부: 신문 및 각종 간행물의 한자를 1968년까지 2,000자, 1969년까지 1,300자, 1970년까지 700자로 각각 줄이고, 1972년에는 한글을 전용토록 할 방침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관계법을 제정한다.
총무부: 각종 공문서∙인사 기록 카드에 한자를 점차적으로 줄인다.
법원 행정처: 호적, 등기 사항과 소송 기록 등을 점차적으로 한글로 표기한다.

● 1968년 5월 2일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지침(안) 발표 국무회의 의결.
상용 한자는 1968년도에는 2,000자, 1969년도에는 1,300자로 줄여, 1972년까지 한자를 단계적으로 완전히 없애고, 1973년부터 전면적인 한글 전용을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한글 전용 5개년 계획 세부 지침도 발표.
(1) 공문서는 특수한 것은 68년까지 한자 병용을 허용, 69년부터 한글을 전용하고
(2) 법령문은 72년도까지 뜻의 전달이 곤란한 것만 괄호 안에 한자를 덧붙이며
(3) 호적∙등기∙주민 등록은 70년도부터 한글을 전용하며
(4) 각급 교과서, 정부 간행물 및 일반 정기 간행물은 73년도부터 한글을 전용토록 한다.
그리고, 이 계획 실천을 위하여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설치한다.

● 1968년 5월 4일
덕수궁에 세종 큰 임금 동상 세움.

● 1968년 10월 7일
박 정희 대통령의 한글 전용 촉진 7개항.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지 520년이 넘도록 한글을 전용하지 않고 주저하는 것은 비주체적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며, 한문을 모르는 많은 국민을 문화로부터 멀리하려는 행위다.
(1) 1970년 1월 1일부터 행정•입법•사법의 모든 문서 뿐만 아니라, 민원서류도 한글을 전용하며, 국내에서 한자가 든 서류를 접수하지 말 것.
(2) 문교부 안에서 ‘한글 전용 연구 위원회’를 두어, 1969년 전반기 내에 알기 쉬운 표기방법과 보급 방법을 연구 발전시킬 것.
(3) 한글 타자기의 개량을 서두르고, 말단 기관까지 보급할 수 있도록 할 것.
(4) 언론•출판계의 한글전용을 적극 권장할 것.
(5) 1948년에 제정된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1970년 1월 1일부터는 전용토록 할 것.("대한민국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한자를 병용한다"는 법조문의 단서를 뺀다.)
(6) 각급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앨 것.
(7) 고전의 한글 번역을 서두를 것.

● 1968년 10월 9일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첫 번째 ‘꽃 바치는 자리’를 마련하여, 12개 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 대표들과 연합회 임원들이 모여 세종대왕의 업적을 추모하고, 국어운동 결의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세종대왕 영전에 꽃다발을 바쳤다. 연례행사로 마련한 세종대왕 동상 헌화식은 이것이 처음.

● 1968년 10월 9일
(전국 17개 대학으로 구성된) 각 대학 국어운동학생회 연합회가 제1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
한글전용 찬반에 관한 기초 여론조사(설문 3개)를 1968년 8월 1일부터 같은 해 9월 30일까지 전국 주요 도시의 학생, 일반인, 공무원 등 총1,6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서, 그 결과를 발표.

한글전용 지금 당장 실시 찬성 (56.1%), 3년 이내 실시 찬성 (13.0%)
5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 (9.7%),  6-10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 (5.9%)
1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 (4.0%),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자료: [연표]         박정희 정부의 한글전용시책

● 1968년 11월 5일
한글 전용에 관한 국무총리 훈령 제 68호.
정부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1948년 10월 9일에 제정하고, 그의 실천을 위하여 정부공문서 규정 ‘대통령령 제 2056호’으로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쓰도록 하고 있으나 이의 실천이 잘되지 않고 있으므로 다음 사항을 지시하니 한글 사용에 철저를 기하도록 할 것.
(1) 한글의 전용
① 공문서 작성에 있어서 이미 한글만으로 표기 하던 것을 더욱 철저히 시키고 공문서의 별지나 부록 자료 등 부속 서류도 한글로 쓰도록 한다.
② 한글 전용에 관한 단서에도 정부에서 발행하는 모든 공문서 기타 표현물(표어, 포스터, 현수막, 아치 및 간판, 정부 간행물, 신문 및 잡지 등에 게재하는 공고, 광고문 등)을 전부 한글로 쓴다. 다만, 한자가 아니면 뜻의 전달이 어려운 것은 괄호 안에 상용 한자의 범위 안에서 한자를 표기해도 무방하며 1970년 1월 1일부터는 완전히 한글로만 표기하도록 한다.
③ 법규문서도 전항에 따른다. (정부공문서 규정 제 7조 1항 단서(대한민국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 한 한자를 병용한다.)는 폐지)
(2) 어휘 및 표기 방법
① 문장의 어휘도 우리말로 바르게 쓴다.
② 각급 기관장은 한자로 쓴 기술 및 행정 용어를 우선 자체 내에서 통일 사용하도록 한다.
③ 각 중앙 행정기관의 장은 분기마다 통일 사용토록 한 술어를 문교부 장관에게 제출하여 문교부 장관은 법률술어, 과학술어, 학술술어 및 행정술어 등 기능별로 분류 각 관계 부처와 협의하여 전 기관이 같은 어휘로 표기 방법을 쓰도록 한다.
(3) 서식 준비
① 총무처 장관은 1968년 12월 중으로 서식 정비 계획을 수립하여 정부에서 제정하는 모든 서식을 한글로 표시할 수 있게 고친다.
② 성명은 한글로 표기하되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한다.
③ 서식 각 난에는 난 번호를 부여하여 전자 처리 기계나 텔레타이프, 텔렉스를 이용 할 수 있게 한다.
(4) 민원 서류
각급 행정 안내실에서는  민원 서류를 대필 작성하여 줄 때 한글로 써 주도록 하고 직접 써서 가져 오는 경우에는 한글로 쓰도록 지도 계몽하며 1970년 1월 1일부터는 완전 한글로 쓰도록 한다.
(5) 감독 확인
각급 기관장은 소속 직원이 사무처리 과정에서 한글로 전용하도록 지도 감독하고 여러 가지 감사 때에는 이의 실천 상태를 확인하도록 감사 점검표 착안점을 추가한다.

● 1968년 11월 5일
한글 전용 연구위원회 설치. 대통령령 제 3925호.
{국가기록원} 자료: 자료마당/기록물정보콘텐츠/주제콘텐츠/한글이 걸어온 길

● 1969년 1월 15일
국무총리, 서식 정비 지시(제 3호) – 등기, 호적사항 한글 전용 기본 방침.
{국가기록원} 자료: 자료마당/기록물정보콘텐츠/주제콘텐츠/한글이 걸어온 길

● 1969년 1월 30일
이 희승 등 국어 학자 140명, 한글전용반대 성명 발표.

● 1969년 5월 23일
문교부.
외래어 한글 표기법 발표.

● 1969년 9월
교과과정 개정령 공포. 한자 교육 근거 삭제, 교과서 한자 삭제.
{국가기록원} 자료: 자료마당/기록물정보콘텐츠/주제콘텐츠/한글이 걸어온 길

● 1970년 3월 2일
한자 없는 교과서로 순 한글 교육 실시.

● 1970년 3월 23일
한글학자 최 현배 세상 떠남. 경남 울산에서 태어남. 경성 고등 보통 학교(현 경기고)와 주시경이 세운 조선어 강습원에서 배웠고, 1926년 연희전문교수가 되어 철학 논리학 국어학 가르침.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선사람이다. 세계는 넓건마는 조선만이 내 땅이다. 삼천리 강산 위에 곳곳마다 피땀 흔적 이 강산이 역사를 잇고 잇고 다시 이어 이천만이 엉키엉키 살아보세." 1924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조선민족 갱생의 도’에 이렇게 썼다. ‘식민지’의 현실에서 외솔 선생님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만들고 1936년 표준어를 정하는데 참여했으며, <큰사전>을 만들다가 1942년에 독립운동 죄로 옥살이(조선어 학회 사건). 45~54년 문교부 편수국장을 2차례 지냈고, 49년부터 20년 간 한글 학회 이사장을 지내고, 57~68년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대표이사 등  국어운동의 중심적 인물로 지내며 국어학 연구, 국어정책 수립, 교육학 연구와 한글운동에 전념하여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국어학 분야 연구는 <우리말본>, <한글갈>, <글자의 혁명(1947)>, <한글의 투쟁(1958)>, <한글만 쓰기의 주장(1970)> 등의 저서로 집약된다. <우리말본>은 주시경 이래의 문법연구를 계승, 발전시켜 20세기 전반기 문법연구를 집대성한 것으로 한글 전용, 한글 가로쓰기 운동, 한글 풀어쓰기 실험,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 <우리말 큰사전> 편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 밖에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1927)>, <나라 건지는 교육(1963)>, <조선민족 갱생의 도(道)(1930)>, <나라 사랑의 길(1958)> 등이 있다. 55년 제 1회 학술원공로상, 62년 건국공로훈장 단장, 67년 5•16 민족상 본상을 받았으며, 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 되었다.
{한글 학회} 자료: 현대 인물/최 현배

● 1972년 6월 7일
문교부.
김 종필 총리와 민 관식 교육부 장관은 교육용 기초한자 1,781자 선정 발표.
{조선일보} 자료: 한자의 올바른 이해
{국무총리실} 자료: 역대 국무총리
{교육인적자원부} 자료: 역대장관보기

● 1972년 8월 16일
문교부.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 확정.(중학교 900자, 고등학교 900자)

● 1972년 9월 5일
한글 학회 월간 학회지 <한글 새소식>을 펴냄. <한글 새소식>은 실천 말글 운동을 주도함.

● 1974년 7월 11일
문교부.
문교부 민 관식 장관은 ‘교과서 한자 병용 방침’ 발표.

● 1976년 9월 22일
문교부.
초등학교 한자 교육 부활 않기로 발표.

● 1977년 10월 27일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한글보람을 가슴에 달자는 운동을 1977년 10월 6일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에서 처음 기획• 제안했고, 10월 27일에는 국어 순화 추진회 회원들로부터 이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 받았다. 이어 도안 공모에서 김 정수 동문(현재 한양대 교수)이 고안한 도안이 뽑혔고, 그뒤 우리 동문회는 시제품 35개와 보급품 1천여 개를 잇달아 제작 보급했다. 한글보람은 1978년 3월까지 모두 1,250개가 제작돼 팔렸다.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자료: 추억거리/’한글보람’ 달기 운동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자료: 해적이/한글보람 운동에 대해 알리는 글

● 1980년 8월 28일
1933년 10월 29일 조선어 학회(현 한글 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를 크게 고침.
{한글 학회} 자료: 자료 마당/한글 맞춤법

● 1984년 5월 30일
학술원 산하 임의 연구기관인 ‘국어연구소(소장: 김 형규)’ 창립. ‘국어연구소’는 대통령령 제13163호(1990.11.14.)에 따라 ‘국립국어연구원(1991.1.23. 초대원장: 안 병희)’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으로 설립, ‘국립국어원(2004.11.11. 원장: 남 기심)’으로 발전한다.
{국립국어원} 자료: 소개/발자취

● 1988년 1월 19일
문교부.
새로운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널리 알림.

● 1989년 3월 1일
문교부 고시 제 88-1호
문교부 주관으로 1988년 1월 19일에 일반인에게 알리고 ‘한글 맞춤법’을 시행.
{한글 학회} 자료: 자료 마당/한글 맞춤법

● 1989년 6월 21일
유네스코, 문명퇴치 공로상인 <세종대왕 문해상> 만들고 1990년 부터 대상자를 뽑아 문맹퇴치의 날인 매년 9월 8일(문해의 날) 수여함.
수상대상은,
(1) 문맹퇴치사업에 직접 종사한 경우
(2)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문맹퇴치사업 종사
(3) 문맹퇴치를 위한 언론캠페인 종사
(4) 문맹퇴치를 위한 교육자재개발 생산
(5) 문맹퇴치관련 학술연구
(6) 문맹퇴치사업계획 수립 및 이를 위한 조사업무
(7) 청소년의 문맹퇴치사업 참여유도
(8) 문맹퇴치에 공이 있는 언론 등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 자료: UNESCO소개/유네스코 국제상

● 1990년 8월 24일
국무회의, 공휴일 변경 의결,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기로 의결.

● 1990년 11월 5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 13155호.
1991년 1월 1일 부터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기로 함.

● 1990년 12월 27일
대법원, 인명용 한자로 2,731자만 이름에 쓰도록 결정. 1991년 4월 1일부터 실시.

● 1992년 6월 17일
남북한, 프랑스에서 기계화를 위한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통일안에 합의.

● 1993년 2월 24일
옥외 광고물 관리법 중 한글 쓰기 규정. (9월 25일부터 시행)
모든 옥외 광고물의 문자는 한글 맞춤법, 국어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어를 쓰게 될 때는 한글과 함께 씀. 그리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는 영업정지 또는 고발하도록 대통령 시행령 제 13856호 제 13조 발표.

● 1994년 2월 23일
문화체육부.
문화체육부와 국어정보학회, 조선일보가 컴퓨터용어 순화 검토위원회를 만들어 ‘컴퓨터 용어 순화안’ 1600낱말 확정.
{조선일보}자료: 컴퓨터 용어 순화안 확정/1600단어 전산 관련 첫 국가 표준안
{조선일보}자료: 북, 90%이상 우리말로 고쳐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 자료: 문화체육부 셈틀 용어 순화안

● 1995년 3월 7일
한글 운동가이자 한글 기계화의 선구자 공 병우 박사 세상 떠남(1906~1995). 안과 의사, 한글 기계화 운동가, 사진작가로 활동. 평안북도 벽동 출생. 1926년 조선의사 검정시험에 합격, 36년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38년에는 공안과 병원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한글타자기 개발에 전념하였으며, 공 병우 식 국문 타자기를 발명하였다. 69년에는 공 병우 타자기 연구소장에 취임하여 맹인 점자 타자기•한영겸용타자기를 개발하였고, 70년대에는 한글 네벌식 글자판 반대투쟁에 앞장서 박 정권에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81년 이후는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민주화운동과 한글 기계화 운동을 펴 미국 서재필 재단에서 <서재필상>을 받기도 하였다. 한글 기계화가 늦은 것이 안타까워 계속 초성•중성•종성의 세벌식 자판으로 교포 사회의 컴퓨터와 타자기의 글자판을 통일하고 세벌식의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어 보급했다. 미국에 간지 8년 만인 89년에 영구 귀국한 공 병우는 남은 인생을 한글 기계화 운동에 전념할 생각으로 옛 공안과 건물을 한국 문화원으로 고쳐 한글 운동 본부로 활용하면서 한글기계화 운동을 계속하였다.
{한글 학회} 자료: 현대 인물/공 병우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자료: 공병우상
{세벌식 사랑 모임} 자료: 공 병우 박사님

● 1995년 11월 1일
김 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선언에 따른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조기 교육 발표. (1996년부터 시행)
{조선일보} 자료: 국교 영어교육, 97학년도 3학년부터

● 1997년 10월 1일
훈민정음 해례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1997년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열린 제3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공식 발표하여 등재 됨.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 자료: UNESCO소개/유네스코와 한국

● 1997년 12월 7일
소설가 복 거일,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제 249호>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라 주장하여 영어 공용화 론이 불붙기 시작함.

● 1998년 11월 8일
율촌 장학회(이사장 신 춘호 농심회장)는 국한문 혼용 교과서인 ‘중학교 한국어’ 1~3학년용 6책을 간행.
{조선일보} 자료: [국한문 혼용 교과서출간] 율촌장학회 ‘2세 언어교육'

● 1999년 2월 9일
도로 표지판과 공문서에 한자 병용 발표.
김종필 총리와 신낙균 문화 관광부 장관은 도로 표지판과 공문서에 한자 병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
{문화일보} 자료: 정부 한자 사용, 교육 확대 추진
{동아일보} 자료: 네티즌들, 공문서-표지판 한자병기 방침에 반발
{동아일보} 자료: 「한자병용」 추진방안 찬반 논란 확산
{동아일보} 자료: [네티즌의 생각]『漢字병용 반대』68.3%

● 1999년 5월 30일
김 종필 총리가 행정자치부에 주민 등록증 한자 병기 검토 지시•시행.
{조선일보} 자료: 주민증 이름 한글-한자 병기 검토

● 2000년 7월 7일
문화관광부 고시 제 2000-8호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발표. 1992년 6월 17일 남북한이 프랑스에서 기계화를 위한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통일안을 마련했었다는 점에서 문제를 남겼다.
{한글 학회} 자료: 자료 마당/국어의 로마자 표기법과 해설

● 2001년 5월 14일
민주당 제주 국제 자유 도시 정책 기획단(단장 이 해찬, 총괄분과위원장 김 윤식)은 ‘제주 국제 자유 도시 특별법’ 제정에 제주도를 영어 공용어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 6개월 동안 학계와 시민의 반발로 제주도 영어 공용어 계획은 뺀 채 확정함.
{문화일보} 자료: 영어를 제주 공용어로

● 2004년 11월 11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개정(대통령령 제18588호 2004.11.11.)으로 국립국어연구원에서 국립국어원으로 이름을 바꿈.
{국립국어원} 자료: 소개/발자취

● 2005년 1월 27일
‘국어기본법’ 만듦. 법률 제 7368호(2005.1.27. 공포)

● 2005년 12월 29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한글날’이 국경일로 정함. 국경일에 관한 법률. 법률 제 7771호(2005.12.29. 일부개정)

● 2011년 1월 12일
서울시, 세종대로 일대 47만㎡에 ‘한글 마루지’ 조성 발표.
{서울특별시} 자료: 시정소식

● 2012년 12월 28일
‘한글날’이 1990년 공휴일에서 빠진 후 21년만에 공휴일로 다시 정함.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 24273호(2012.12.28. 일부개정)

● 2013년 6월 28일
울산시 중구청, 최 현배 탄생지인 울산시 중구청에서 ‘울산광역시 중구 한글사랑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만들어 공문서∙전자문서∙간판∙한글과 한국어 소외계층의 지원을 발표하고, 한글마을을 만들겠다고 발표. 울산광역시 중구 한글사랑 지원에 관한 조례. 조례 제655호(2013.06.28. 제정)
{울산광역시 중구} 자료: 민원행정/민원24

● 2014년 5월 2일
국회에서는 국회 상징인 국회기와 배치를 ‘國’(나라 국)자를 한글로 ‘국회’로 바꾸는 법안 발표. 국회기 및 국회배치 등에 관한 규칙. 국회규칙 제187호(1973.06.01. 제정, 2014.05.02. 일부개정)
{국회정보시스템} 자료/법률지식정보시스템

● 2014년 7월 17일
서울시 의회, 지나친 영어 편중 교육과 국어를 멸시, 학생들의 욕설과 비속어 남용, 정부와 시민단체에서도 어른들의 지나친 막말을 바로잡고 바르고 고운 언어생활을 익히도록 하기 위해 국어 사용 조례 제정. 서울특별시조례 제5724호( 2014.7.17. 제정)
{국가법령정보센터} 자료: 자치법규/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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