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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2003년 11월 14일 00시 13분에 남긴 글입니다.
사잇소리 따위의 본바탕

사잇소리 따위의 본바탕

김 정수 (한양대 교수, 국어학)



"올봄"을 [올봄]으로 읽어야 하나, [올뽐]으로 읽어야 하나? "효과"를 [효과]로 읽어야 하나, [효꽈]로 읽어야 하나? "동영"이란 사람을 [동영]이라 불러야 하나 [동녕]이라 불러야 하나? '문교부 표준어 규정'(1988)에서 "옷 입다"는 [오딥따]라 하면 안 되고 [온닙따]라 해야 하고, "송별연"은 [송벼련]이라 해야지 [송별련]이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시비는 사잇소리, 된소리 되기, ㄴ 덧나기, ㄹ 덧나기 등에 대해서 잘못된 지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괜히 일어나는 것이다.

국어학계에서는 이 문제가 오래도록 논쟁을 일으켜 왔지만 대다수가 합의할 만한 명석한 결론은 아직 나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이런 현상이 주로 두 낱말이 합쳐 한 낱말을 이룰 때 그 사이에서 일어나고 더러 ㅅ 받침으로 적혀 왔기에 '사이시옷 현상'으로도 불러 왔고 음운 현상의 하나로 치고 '사잇소리 현상'이라고도 불러 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일치되게 인정하는 것은 이 사이시옷 또는 사잇소리가 뒷말을 꾸미는, 관형격 기능이 있다는 것 정도다. 무슨 기능이 있다면 당연히 이것은 문법 기능이며 또한 언어적인 의미에 속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기능 곧 의미를 표현하는 형식 곧 사잇소리 등은 형태소로 인정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이르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상한 노릇이다.

한 가지 현상 가운데 일부에는 맞고 일부에는 맞지 않는 가설은 버려야 한다. 사잇소리가 뒷말을 꾸민다는 가설은 맞는 경우보다 안 맞는 경우가 더 많은 잘못된 가설인데도 이것이 통설에 가깝게 퍼져 있다. '문교부 표준어 규정'의 제28항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휴지가 성립되는) 합성어의 경우에는, 뒤 단어의 첫소리 'ㄱ, ㄷ, ㅂ, ㅅ, ㅈ'을 된소리로 발음한다." 하면서 "문-고리[문꼬리], 눈-동자[눈똥자], 신-바람[신빠람], …" 등을 본보기로 들었는데, 이것은 권위 있는 국어학자들의 일치된 연구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두 낱말 사이에는 사이시옷이 들어가지 않아도 앞말은 뒷말을 꾸미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언어 일반의 보편 현상이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라고 노래할 때 [바람껴레]라고 발음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다. 자고 난 자리를 [잠짜리]라 하지 않고 [잠자리]라 하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고 그렇게 말해도 오해할 염려가 전혀 없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 "김밥[김빱]"이라 하지만 내 나이 이상 되는 사람들은 대개 [김밥]이라 한다. 이것은 어떤 권위 있는 학설이나 명문화한 규범에도 선행하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쪽이 옳으냐 그르냐 하고 다툴 문제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한 낱말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관형격 기능을 말할 수 있는 자립적인 두 낱말 사이에만 있는 현상도 아니다.〈표준 발음법〉제6장 '경음화'와 제7장 '음의 첨가' 현상으로 예시된 자료만 자세히 보아도 드러나는 일이다. "신을 신고[신:꼬], 나이가 젊지[점:찌]" 등은 낱말만 아니라 줄기와 씨끝 사이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인다. "영업-용[영엄뇽], 식용-유[시굥뉴]" 등은 낱말과 뒷가지 사이에서, "검열[검:녈/거:멸], 금융[금늉/그뮹]" 등은 낱말도 못 되는 한자말 뿌리 형태소 사이에서 같은 현상이, 그것도 수의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너 문 열어[문녀러]! 빨리 안 열어[안녀러]?" 여기 ㄴ이 덧나는 것은 낱말이 합성되어서도 아니고 관형격 기능이 있어서도 아니다. "하는 일[하는닐] 없이 돈만 버리네."라 할 때 "하는"은 관형격 표지가 따로 필요하지 않은 관형어인데도 ㄴ이 덧날 수 있다.

이 현상은 예외 없이 표현을 강화하는 문법 행위이다. 형태소의 앞이나 뒤나 그 사이나 어디서나 언중이 행할 수도 있고 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수의적인 언어 행위이다. [고추] 대신 [꼬추]라 하는 것은 앞에서, [고추 잎] 대신 [고춘닢]이라 하는 것은 사이에서, [여보] 대신 [여봇]이라 하는 것은 뒤에서 표현을 강화하는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는 언중의 행위이기에 아무도 막을 수 없고 섣부른 노력과 순화라는 명분으로 교정할 수 없다. 토박이말이나 한자말이나 갓 들어오는 서양 외국말이나 가리지 않고 음절의 수가 많든 적든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문교부 한글 맞춤법'(1988) 제30항에서 두 음절짜리 한자말 여섯 개에만 사이시옷을 적게 한 것은 한자말도 잘 모르는 한자 혼용주의자들이 국가 규범을 주장한 탓이다. 요새 방송인들인지 일부 국어학자들인지가 어떤 말에는 된소리 되기나 ㄴ 덧나기 현상이 있고 어떤 말에는 없다 하면서 [효과]라 하고 [올봄]이라 하고 [동영]이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언중의 권한을 침범해 가며 자기들의 시야가 좁은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효과], [올봄], [동영]은 기본형이고, [효꽈], [올뽐], [동녕]은 그 강세형인 만큼 언중이 선택하는 대로 다 쓸 수 있다. 다만 언중 다수가 강세형을 택한 것으로 보이면 그 쪽을 따르고 기본형을 쓰는 사람이 남아 있으면 기본형을 쓰는 것도 무난할 것이나, 억지로 강세형을 버리고 기본형만 쓰자 하는 것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머리말"은 안 되고 "머릿말"이어야 한다고 하던가? 유식한 표현을 [문자]라 하고 글자를 [문짜]라 하는 것은 기본형과 강세형이 오랜 세월을 거쳐 서로 다른 말로 분화한 것이다. [하릴없다]와 [할 릴 없다], "점잖다"[점잔타]와 "젊지 않다"[점찌안타], "무녀리"[무녀리]와 "문 열 이"[문녀리] 등도 마찬가지다. 서울 사람은 "산을 넘고[넘꼬]"라 하고 경상도 어떤 사람은 "산을 넘고[넘고]"라 하는데, 이것도 기본형이 방언 지역에서 보존된 결과다. 이처럼 역사적인 뿌리가 있는 언중의 다양한 언어 행위를 쉽게 판정하고 국가 규범입네 국가 기관입네 하면서 함부로 가위질해서는 안 된다. 앞장서지 말고 그저 뒤나 조심 조심 따라가면서 눈치 채지 못할 만큼만 다듬고 섬겨 주는 것이 연구자의 분수며 학계의 한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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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권㉨1967-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