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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2012년 03월 08일 14시 43분에 남긴 글입니다.
'언문'이 '상말 글자'라니?

표준국어대사전의 거짓말
- 언문이 상말 글자라니?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은 ‘언문(諺文)’을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말.”이라고 풀이하였다. ‘상말’이란 ‘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로서 흔히 ‘쌍말’이라고도 한다. 이 사전의 뜻풀이는 잘못이다. 언문이 상말 글자라니? ‘언문’은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흔하게 쓰던 말이므로 그 사용 실태를 분석하면 너무도 쉽게 그 뜻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풀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도가 숨어 있지나 않은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가)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기록에 처음 ‘언문’이란 말이 나온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이 글에서 ‘언문’을 ‘상말을 적는 문자’로 바꾸어 보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상말을 적는 문자 28자를 지었는데 …’

(나) 다음 기록은 <세종실록>, 세종 26년(1444) 2월 16일 기록이다. ‘집현전 교리 최항, 부교리 박팽년, 부수찬 신숙주, 이선로, 이개, 돈녕부 주부 강희안 등에게 명하여 의사청에 나아가 언문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하게 하고[以諺文譯韻會], 동궁과 진양대군 이유, 안평대군 이용으로 하여금 그 일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모두가 성품이 예단하므로 상을 거듭 내려 주고 이바지를 넉넉하고 후하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으니, 이 글에서 ‘언문’ 대신 ‘상말을 적는 문자’을 대입하여 보자. ‘… 강희안 등에게 명하여 의사청에 나아가 상말을 적는 문자로 ≪운회≫를 번역하게 하고 …’

(다) 그리고 <세종실록>, 세종 26년 2월 20일에 기록된 최만리의 상소에서 ‘언문’이 쓰인 뜻을 짚어보면,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엎디어 보옵건대, ①언문(諺文)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를 운전하심이 천고에 뛰어나시오나, 신 등의 구구한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되는 것이 있사와 감히 간곡한 정성을 펴서 삼가 뒤에 열거하오니 엎디어 성재(聖栽)하시옵기를 바랍니다. 1.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행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②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설혹 말하기를, ‘③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1. 옛부터 구주(九州)의 안에 풍토는 비록 다르오나 지방의 말에 따라 따로 문자를 만든 것이 없사옵고, 오직 몽고·서하·여진·일본과 서번의 종류가 각기 그 글자가 있으되, 이는 모두 이적(夷狄)의 일이므로 족히 말할 것이 없사옵니다. 옛글에 말하기를, ‘화하(華夏)를 써서 이적을 변화시킨다.’ 하였고, 화하가 이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역대로 중국에서 모두 우리 나라는 기자의 남긴 풍속이 있다 하고, 문물과 예악을 중화에 견주어 말하기도 하는데, 이제 따로 ④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과 같아지려는 것으로서, 이른바 소합향(蘇合香)을 버리고 당랑환(螗螂丸)을 취함이오니, 어찌 문명의 큰 흠절이 아니오리까.…’ ”라고 하였는데, 이때 ‘언문’은 ①②③④를 정리해 보아도, ‘상말을 적는 문자’가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라) ≪훈민정음≫ 해례본(1446)은 세종이 직접 쓴 서문과 정인지 등이 쓴 해례를 묶은 책으로서 가장 정음을 높이고 자세히 설명한 책인데, 이 책에서 이미 ‘언어(諺語)’라는 말과 ‘언(諺)’이라는 말이 나온다. 합자해를 보면, ‘如諺語爲地 如諺語혀爲舌(우리말 는 한자 地를 표시한 것과 같고 우리말 혀는 舌을 표시한 것과 같다.)’, ‘文與諺雜用則有因字音而補以中終聲者(한자와 우리글을 섞어 쓸 때는 글자 소리에 따라 가운뎃소리나 끝소리를 보충할 때가 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친히 명을 내려 임금께 바치는 서책에 그 임금이 지은 글자를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백보 양보하여 조선시대 사람들이 중국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우리 자신을 업신여기는 풍토가 있었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상말을 적는 문자’라고 낮추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말하는 사람은 모두 상말하는 상놈인가 말이다.

(마) 세종은 28년(1446) 11월 8일에 언문청을 설치하였다. 실록에 따르면, “≪태조실록≫을 내전에 들여오기를 명하고,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일의 자취를 상고해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시(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춘추관에서 아뢰기를, ‘실록은 사관이 아니면 볼 수가 없는 것이며, 또 언문청은 얕아서 드러나게 되고 외인의 출입이 잦으니, 신 등은 매우 옳지 못하다고 여깁니다.’ 하였다. 임금이 즉시 명령하여 내전에 들여오게 함을 돌리고, 춘추관 기주관 어효첨과 기사관 양성지에게 초록(抄錄)하여 바치게 하였다.[命太祖實錄入于內, 遂置諺文廳, 考事迹, 添入龍飛詩. 春秋館啓 實錄, 非史官, 不得見.  且諺文廳淺露, 外人出入無常, 臣等深以謂不可. 上卽命還入內, 令春秋館記注官魚孝瞻, 記事官梁誠之抄錄以進.]”라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정음청’이 아니라 ‘언문청’이라는 이름의 관청을 만든 것은 당시 사람들이 정음과 언문을 동급의 말로 썼음을 드러내는 일이고, 중국의 사전 풀이와 같이, ‘언(諺)’을 ‘문자로 기록된 말이 아닌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늘 주고받는 말’이라는 1차적인 뜻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기록되지 않은 말, 기록 이전의 말, 사람의 입으로 주고받는 말’을 일러 ‘언(諺)’이라 하고, 이것을 적는 새로운 글자이기 때문에 ‘언문(諺文)’이라 한 것이다. 곧 ‘우리글 훈민정음’을 대신해서 일컫는 말로 쓴 것이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언문이란 말을, ‘상말을 적는 문자, 훈민정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서 사용하였다면, 적어도 위 기록처럼 임금 직속 국가 기관의 이름으로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뜻으로 일부러 사용하는 자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망발이 아니겠는가?

(바) <중종실록> 중종 6년(1511) 9월 5일 기록에는 ≪설공찬전≫을 금서로 하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헌부가 아뢰기를, ‘채수(蔡壽)가 ≪설공찬전≫을 지었는데, 내용이 모두 화복이 윤회한다는 이야기로, 매우 요망한 것인데 궁궐 안팎이 모두 현혹되어 믿고서, 한문으로 옮기거나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킵니다. 헌부에서 마땅히 거두어들이겠으나, 혹 거두어들이지 않거나 뒤에 발견되면, 죄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설공찬전≫은 내용이 요망하고 허황하니 금지함이 옳다. 그러나 법을 세울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憲府啓 ‘蔡壽作薛公瓚傳, 其事皆輪回, 禍福之說, 甚爲妖妄. 中外惑信, 或飜以文字, 或譯以諺語, 傳播惑衆. 府當行移收取, 然恐或有不收入者, 如有後見者治罪.’ 答曰 ‘薛公瓚傳, 事涉妖誕, 禁戢可也. 然不必立法. 餘不允.’]”라고 하였다. 여기서 문자는 한문, 언어는 우리말을 가리키며, ‘역이언어(譯以諺語)’는 ‘우리말로 번역함’을 말하므로 곧 ‘언해’를 뜻한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설공찬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임을 밝히게 된 것이다.

(사) 이밖에도 ≪훈민정음≫ 언해를 비롯하여 수많은 언해본이 전해지는데, ‘언해(諺解)’라는 말이 처음 쓰여진 것은 ≪소학언해≫(1587)와 ≪논어언해≫(1588~1590) 등 사서 언해(四書諺解)라고 한다. 여기서도 ‘언(諺)’은 ‘우리 말(글)’로 풀어야 옳다. 이와 비슷한 말로, 한문의 원전에 정음으로 달아놓은 구결을 ‘언토(諺吐)’ 또는 ‘언두(諺讀)’라 부르는 일과, 언해를 ‘언역(諺譯)’ 또는 ‘언석(諺釋)’이라고 쓴 것을 볼 때, ‘언(諺)’은 항상 ‘우리 말(글)’이라는 뜻으로 썼던 말임을 알 수 있으니, 조선시대의 ‘우리’는 곧 ‘조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초기 기록에서 보기글을 찾아본 결과, ‘언문’이란 “훈민정음을 ‘우리나라 백성들이 주고받는 말을 적은 문자, 우리 글자’라는 뜻으로 일컬은 말”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만리와 같은 유학자들은, 중국과 대조하여 ‘조선 글자 또는 중국이 아닌 변방의 글자’로 여기고 이 말을 썼음도 알 수 있다. 언문과 함께 ‘언어(諺語)’라는 말도 해례본과 실록에 나타나는데, 이 말은 중국에서도 썼던 낱말이다. 큰 뜻은 ‘백성의 말소리’이며,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는 ‘(언문과 짝을 이루어) 우리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언문-우리글, 언어-우리말’ 정도로 풀이하면 잘 들어맞는다. 다음 달에는 중국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한다.(홍현보. http://cafe.naver.com/azazaq 2012.2.22.)



[뉴시스 2009. 10. 8.]


세종대왕은 민족의 문자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했다. 범국민적으로 쓰고 있는 ‘한글’은 주시경이 지어낸 말이다.

애민정신과 철학을 담은 고차원 명칭이 있건만, ‘훈민정음날’이 아니라 ‘한글날’인 까닭은 무엇인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24자 체계의 한글이 아니다. 완전한 어문 시스템인 세종대왕의 28자 훈민정음이다. 일제강점기에 훈민정음의 또 다른 이름인 ‘諺文(언문)’에 딴죽을 건 데서 비롯된 작명이 ‘한글’이다.

세종대왕은 새로 제작한 표음문자를 正音(정음)과 諺文, 두 이름으로 불렀다. 성격을 달리 해 연구소인 언문청과 인쇄소인 정음청을 설립했다. 정음은 소리(音), 언문은 글(文)을 강조한 명칭이다. 이후 560여년이 흘렀다. 학교에서는 “諺(상말 언) 자의 언문은 쌍것들이 쓰는 말이란 뜻으로 한글을 비하한 명칭”이라고 가르친다. 인터넷 국어사전은 “언문: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말”이라고 설명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위인전 ‘주시경’은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천대받던 우리 글에 자랑스런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은 주시경”이라며 받들고 있다.

어문연구가 박대종 소장의 판단은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28년(1446) 11월8일 세종대왕은 드디어 언문청을 설치했다’는 기록에서처럼 세종은 언문이란 명칭을 직접 사용했다. 세종이 천하고 비하하는 의미의 명칭을 직접 붙인 셈이 된다. 요즘말로 온갖 악플러(최만리, 정창손, 김문 등)들에 시달리면서도 심혈을 기울여 지은 자신의 걸작에 비하하는 의미의 명칭을 몸소 사용했다는 얘기인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이의 제기다.

‘두시언해’, ‘법화경언해’, ‘박통사언해’, ‘사서언해’, ‘언해구급방’ 등 언해(諺解)가 들어간 이름은 매우 많다. 2008년 초에는 국어학자들이 훈민정음 언해본을 복원하는 경사도 있었다. 거기에도 ‘諺’이라는 천대어가 붙어있다. 줄곧 누워서 침 뱉기를 해오고 있는 꼴이다. 과연 그러한가.

박 소장은 “우리 후손들이 諺자의 뜻을 곡해한 것”이라면서 정답을 제시한다. “諺은 言(말씀 언)과 彦(선비 언)으로 이뤄져 있다. 彦자를 잘 살펴보면 위쪽에 文(글월 문) 자가 들어 있어 글 잘하는 ‘훌륭한 선비’를 뜻한다. 나아가 의미 확대과정을 거쳐 중국의 유명한 운서인 集韻(집운)에서처럼 ‘常(늘 상)’의 뜻도 나타낸다. 彦: ‘선비’, ‘훌륭하다’→크다→두루→고르다→‘일정하다(常 상)’

보다시피 나쁜 의미가 전혀 없다. 핵심 포인트는 諺자에서의 彦이 위의 여러 뜻 중에서 선비가 아닌 常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諺은 彦(=常)+言의 합침으로 ‘常語(상어)=상말’을 뜻한다. 여기서의 常語는 日常語(일상어)의 준말이다. 일상어란 어떤 나라의 세속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나 언어, 곧 어떤 나라의 속담이나 국어를 뜻한다. 따라서 세종이 쓴 諺자의 의미는 쌍말이 아니라 국어=우리나랏말이며, 諺文은 국어를 적는 소리글자, 곧 훈민정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국어’를 가리키는 ‘상말’을 ‘쌍말’로 곡해했다. 우리나라의 일상어를 나타내는 諺(일상어→상어→상말 언) 자가 오늘날 ‘상말→쌍말→쌍것들의 말, 속된 말’로 변질돼버렸다.

‘상말’의 동의어는 ‘상담(常談)’이다. 늘 쓰는 예사로운 말, 상스러운 말 등 2가지 의미를 지녔다. 부정적인 한 면만 취하고 부각시켜 대한민국의 글을 스스로 흠집내고 폄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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