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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2001년 11월 17일 00시 00분에 남긴 글입니다.
서울대 국운회를 창립하기까지.. 몇 가지 기록

<서울대 국운회를 창립하기까지 그리고 그 직후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기록을 위해 정리해 봅니다.>

(1) 1965년 11월 27일 (재수시절)- 박정희 대통령께 편지를 썼다.
그 때 쓴 편지 내용은 따로 보관해 둔 것이 없어 알 수가 없고,
다만 대통령비서실에서 온 편지가 있어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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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에 보낸 이 군의 편지는 대통령께서 받아 보셨습니다.
국민의 주체성과 민족문화 창달을 위해 한글전용을 건의한 이 군의 뜻을 고맙게 생각합 니다. 아무쪼록 학업에 열중하고 인격도야에 최선을 다하여 국가의 앞날에 크게 이바지하기 바랍니다. 이 군의 건강과 성공을 빕니다.
1965년 12월 8일 비서실장 이후락
이봉원 군 (시내 성동구 행당동 317-29)

(2) 1966년 12월 16일 (대학 1학년 재학 중)- 언어학과 교수실에서 허웅 교수님을 모시고 다섯 학생이 간담회를 가졌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한글전용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고,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 참석학생: 이병용, 조웅식, 여문석, 김만성, 이봉원

(3) 1967년 3월 6일- 허웅 선생님, 최현배 선생님, 문제안 선생님을 차례로 찾아 뵙고, 국어운동학생회를 창립하기로 했음을 말씀 드리고 격려를 받았다.

(4) 3월 14일- 허웅 교수님을 모신 자리에서 두 번째 간담회를 열고 발기인대회를 준비했다. 이 날은 발기하기로 찬동한 10명의 학생이 모였다. 발기인선언문과 창립회칙은 이봉원이 작성해 이문수가 검토 확정했다.

(5) 3월 16일(목)- 낮 5:30-7:00 문리대 본2강의실
'국어운동 횃불 점화식'을 열었다.

지도교수: 허 웅 (언어학과 교수)
지도위원: 신익성 (언어학과 교수)
장세희 (화학과 교수) * 다른 일정으로 불참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 대한일보 전무)
문제안 (서라벌예대 교수, 한글전용추진위원회 사무국장)
발기인: 김만성(국문 3), 유한용(언어 3), 이문수(언어 2), 이창균(언어 2), 박무종(언어 2),
김홍묵(사회 2), 이경형(사회 2), 조웅식(심리 2), 이병용(심리 2), 조긍호(심리 1),
전택원(철학 2), 진창욱(영문 2), 이상완 (언어 1), 조흥삼(사학 4),
정영일(법대 법학 3), 박구하 (법대 법학 2), 이봉원 (발기인대표, 심리 2)
<모두 17명>
취재기자: 서울신문사 특집부 박화진

진행: 사회- 이병용
1. 여는말
2. 발기위원 대표 인사와 경과보고
3. 허웅 지도교수의 인사말씀
4. 지도위원 3분의 격려말씀
5. 발기선언문 채택
6. 회칙 잠정 통과
7. 닫는말

뒤풀이: 서울뉴욕 제과점에 가서 발기인 17명 서명 날인

(6) 3월 17일- 전국 대학교와 주요 고등학교 학생회장 앞으로 발기선언문을 발송했다.

(7) 3월 23일(목)- 낮 5:30 문리대 본2강의에서 '서울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를 정식으로 창립하는 첫 총회를 열었다.
발기인 외 새로 두 명의 학생이 더 와서 모두 19명이 창립회원이 됐고, 이병용의 사회 진행으로 먼저 회칙을 박수로 통과시킨 뒤, 회장에는 이문수가 추천한 이봉원이 뽑혔다.
감사엔 조웅식과 이창균이 뽑혔다.

(8) 3월 24일- 학교 당국이 서울대 국운회를 정식으로 인가했다.

(9) 3월 27일- '대학신문' 4쪽 광고란에 '국어운동학생회 창립선언문' 전문을 게재했다.

(10) 4월 8일- 국운회 회장 이봉원과 총무 이병용, 법대 대표 정영일이 서울대 최문환 총장을 면담하여 창립 인사를 드린 뒤 한글전용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11) 4월 11일- 낮 2:30-4:30 문리대 대강당에서, 8백여 명의 학생이 방청한 가운데 국운회 창립 기념 대강연회를 열었다.
[연사] 이봉원 (회장)
정인섭 (중앙대학교 대학원장)
주요한 (시인, 경제과학심의회 심의위원)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
* 한글학회와 한글전용추진회에서 화분을 보내왔고, 이 날 새 회원들이 많이 들어왔다.

(12) 5월 8일- 첫 번째 '고운이름뽑기' 시상식을 문화방송 공개홀에서 열었다.

(13) 6월 5일- 문리대 교정에 '쉬운 우리말 카드'를 매주 월요일마다 한 장씩 붙여 '복된 내일은 쉬운말 쓰기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14) 9월 21일- 문리대 휴게실에서 임시총회 겸 간담회를 열었다. 허웅 지도교수님, 신익성 교수님과 작곡가 금수현 님, 서울신문 신태민 님, 한글전용추진위원회 문제안 님이 참석하셨고, 다른 학교 학생으로는 고대 국운회 박노용 회장과 연대 국운회 정중헌 회장, 그리고 서울대 법과대 국운회 정영일 회장, 서울대 농과대 국운회 김응년 회장, 서울대 음악대 금난새 가 특별히 참석했다.

(15) 1969년 11월 15일-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는 문교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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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권㉨1967-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