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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2003년 10월 23일 14시 19분에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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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름 짓기에서 풀어쓰기 문제

<조선일보 '독자논단' (1980년 8월 1일자) 원고>

제목 : 한글이름 보급하자
글쓴이 : 이봉원 (한글이름펴기모임 회원)

겨레의 주체의식과 국어순화의 차원에서 최근 번지고 있는 각종 이름의 한글화 작업은 문화운동 성격까지 띠고 있어 매우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한글식 이름을 짓고 쓰기가 점차 유행하면서 새로운 문제점이 한두 가지 제기되어 관심 있는 사람들 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어, 여기서 그 문제를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특히 상품이름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는데, 사람이름이나 다른 기능의 이름들의 경우도 같은 기준에서 논의될 수가 있기 때문에, 여기선 상품이름을 중심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몇 가지 상품이름들- '타미나(화장품)', '나들이(화장품)', '아나파(약국)', '부푸러(풍선껌)', '하야비치(술)' 들에서 보면, 모두 그 발상이 우리말 그리고 생활언어에 기초하여 지은 한글이름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왜 우리말을 한결같이 풀어썼느냐 (연철) 하는 것과, 따라서 서양말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연철하여 이름짓는 현상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은, 첫째, 그것은 우리말 이름을 빙자하여 서양말을 흉내내기에 급급한 것이고, 둘째, 말본에 어긋나는 잘못된 말(특히 상품이름)들이 널리 선전되고 사용될 때, 아직 정확한 어휘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혼란을 준다는 것이고, 셋째, 어원을 분명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글식 이름짓기에서 연철도 좋은 방법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 세 가지 염려에 대해 편의상 역순으로 반론을 펴 볼까 한다.

먼저 어원을 잘 알 수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첫째, 모든 말이 다 어원이나 말뜻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또 꼭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예: 아버지, 矛盾)
둘째, 홀로이름씨(고유명사)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그 이름을 처음 지은 사람 외에는 그 뜻을 알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 李鳳遠, 삼성그룹)
셋째, 이름은 실용성에서 어원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실제 그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다시 말해 어원이 문제가 아니고, 그 이름을 가진 장본인(상품)이 어떤 사람(물건)인지에 따라 그 이름은 새롭게 형성된, 보편적이며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 이명래 고약, 제일 양복점, 달나라 제과점, 콘택600 감기약)
넷째: 오히려 노골적인 어원(작명 사유가 되는)이 드러나지 않는 이름이 더 나을 수가 있다. 이런 이름은 사람에 따라서는 저항감이나 혐오감까지 줄 수가 있다. (예: 나온다 구충제, 황 두루미 여사)

그 다음, 말본에 맞지 않는 말이 바른말로 일반에게 오인될 염려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첫째, 일반 어휘를 약간 변형시켜 한글이름을 짓는 방법은 다양한 이름과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는 관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 마루와 마로, 샘과 새암, 이 씨와 리 씨). 이럴 때만이 우리는 국어사전에 오른 낱말만을 가지고 이름을 지어야 하는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 이름에까지 바른말 적기를 고집할 때, 복합어로 된 이름은 띄어쓰기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혼란스럽다. (예: 탐이 나 화장품, 하얀 빛이 술, 안 아파 약국)
셋째, 문장 속에서 글로 적힐 때는 연철한 이름이 혼란이 적다. (예: '나는 배가 몹시 아파 안 아파 약국에 갔다.'보다는 '나는 배가 몹시 아파 아나파 약국에 갔다.')
넷째, '타미나 화장품'과 '하야비치 술' 이름을 '탐이 나 화장품'과 '하얀 빛이 술'로 적지 않는다 해서, '탐나다'란 말과 '하얗다'와 '빛'이란 우리말이 사라진다거나 변용될 염려는 전혀 없다.
다섯째, 이름은 그 기능과 성격에 따라 가치성에서 보편적인 면과 특수한 면이 함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얀 빛이' 술이나 맑은 빛깔의 술이란 뜻의 '말가비치'보다는 '하야비치'가 상품이름으로서는 더 낫다. 사람이름 경우에도 '배 힘찬'은 남자에게, '이 단비'는 여자에게 더 잘 어울린다.
여섯째, 한글은 소리글자인 만큼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나 들이'나 '박 미라'(성이 '박'씨인지 '방'씨인지 확실치 않다.) 같은 사람이름은 잘 지은 이름이라고 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서양말 냄새가 난다는 주장인데, 이것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우리가 한글이름을 쓰자는 원칙이 겨레의 주체의식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어원이 어떻든간에 결과로서 서양말 냄새가 난다는 것은 곤란한 문제다. 그 위에 만에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한글이름이란 가면 속에 서양말을 흉내내고자 하는 사대주의가 숨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배격해야 할 것이다.
사대주의적인 이름들 가운데는 의도가 그렇고 결과도 분명히 그런 것들이 있다. (예: 미세스 고 의상실, 퍼모스트 아이스크림). 그러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결과가 그런 경우와, 의도는 그런데 결과가 그렇지 않은 경우 등은 실상 가려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름을 짓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각해서 할 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비오리', '예그린'처럼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외국말로 오해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드슈(술이름)', '두발로(제화점)' 처럼 분명히 우리말이면서도 묘한 느낌을 갖게 하는 말도 있다.

이상 결론지어 말하건대, 필자의 생각으로는 '타미나 화장품'을 '탐이나 화장품'으로 써도 안 될 것은 없지만, 상품이름으로서 가치가 '타미나'가 더 낫다고 판단돼 그렇게 지은 이름이라면, 굳이 탓할 것이 못 된다는 말이다.
좋은 우리말이고 또는 좋은 우리말에 근거하여 모처럼 지은 한글이름이 다만 연철을 하였고, 붙여적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양말과 다소 비슷해진 느낌이 있다고 (이것은 주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해서 무조건 국적불명의 말로 내몰아친다면, 정말 모처럼 싹튼 우리말 사랑과 힌글이름 쓰기 운동에 적지않은 장애가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이름 짓기에 더욱 과감한 창의력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인 글] '한글이름 짓기에서 연철하기'를 두루이름씨(보통명사)에까지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이름이나 상품이름, 가게이름 같은 홀로이름씨(고유명사)에 한정해 연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말은 말뿌리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두루 쓰는 일반 말에선 연철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도우미'는 "도움이"로, '지키미'는 "지킴이"로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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