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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 2013년 10월 23일 12시 35분에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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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번째 외솔상을 받으며


                 
                                2013년 외솔상 실천부문 수상 소감문
                                                                                        (이  봉 원)

  나에겐 이 날까지 나를 이끌고 지배를 해 온 세 권의 책이 있다. 그 첫 번째 책이 외솔의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1966년 읽음)이고, 두 번째 책이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1980년 읽음)이고, 세 번째 책이 김구의 ‘백범일지’(1993년 읽음)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어린 나이에 만난 외솔의 책으로부턴 우리의 말과 글을 사랑하는 일이 나라사랑의 출발이란 것과 그러기 위해선 일본말 찌꺼기를 버리고 한글만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리영희 책에선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와 좌우파의 균형된 시각을 얻었고, 좀 늦은 나이에 알게 된 백범은 내 삶에서 외솔과 함께 가장 큰 등불이 됐는데, 친일잔재 청산이 말과 글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이신 외솔과의 인연은 고등학생 때 그의 저서 ‘말본’을 공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문법’ 책을 공부해야 더 유리했던 대학교에 입학한 뒤, 곧바로, 현재 한글회관 터에 있던 2층집 한글학회를 방문해 외솔을 처음으로 뵈었다. 그 자리에서 앞서 밝힌 책을 선물 받았는데, 거기에는 ‘나라말을 깨끗하게, 쉽게, 바르게, 풍부하게, 너르게’ 하는 국어운동 다섯 가지 목표와 한글만쓰기의 당위성이 적혀 있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나는 대학 안에서부터 우리 말글 운동을 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한 해 뒤인 1967년 3월 16일, 나는 지도교수로 언어학과 허웅 박사를 모시고 내 전공과목인 심리학 수업을 하는 강의실에서 국어운동 횃불 점화식을 열고, ‘국어운동학생회’란 학내 동아리를 결성했다. 이어 첫 사업으로 우리말 이름에 상을 주는 ‘고운이름자랑하기’ 잔치를 기획하고 5월 8일에 첫 시상식을 열었다. 이런 행사를 첫 사업으로 벌인 까닭은 사람 이름을 짓는 일부터 중국식 작명 관습에서 우리 국민이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의 탄생은 다른 학교에도 영향을 줘 이듬해에는 전국 17개 대학교가 같은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됐고, 떳떳하게 잘 사는 조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함께 젊음을 불태웠다.
  다행히 언론사들이 이러한 학내 동아리 소식을 크게 소개하면서 정부의 경계 어린 차가운 눈길도 차츰 따듯해지더니, 1967년 한글날에 대통령께 보낸 우리의 건의문이 효력을 발휘해 (대통령 문화 고문 이은상 증언), 정부는 이듬해 3월 한글전용 5개년 계획(한글학회 이사 한갑수 초안 작성)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해 세밑에 광화문 복원 건물에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을 달았다. 그러나 이 계획은 한자숭배자 두 사람이 정부의 요직(국무총리, 문교부장관)에 새로 들어서면서 발목을 잡아 아쉽게도 정부 시안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외솔은 비록 내가 학교에서 직접 모신 분은 아니지만, 내게는 대학생 시절 4년 내내 참 스승이셨다. 선생님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 서거하셨는데, 그때는 군대에 있던 터라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 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이 매우 컸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뒤로도 내 사십여 년의 삶에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으시다. 뵈올 때마다 소리없이 활짝 웃으시며 나를 꼭 안아 주시던 그 품이 지금 몹시 그립다. 그런 내가 이제 선생님을 기리는 상을 받게 되어 큰 영광이기는 하지만 왠지 어깨가 움츠러든다. (201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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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35회 외솔상에 이융조·이봉원씨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재단법인 외솔회(이사장 최홍식)는 제35회 외솔상 수상자로 문화부문에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실천부문에 이봉원 작가를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50여 년에 걸쳐 우리나라 구석기를 연구한 이융조 이사장은 역사의 상한선을 신석기에서 구석기로 올려놓아 식민지 사관의 극복과 함께 새로운 역사 해석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이봉원 작가는 사람 이름을 한자 이름 대신 한말글로 쓰자는 운동을 펼치며 우리 사회에서 한말글 이름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
  외솔상은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매년 우리 말과 글의 연구와 발전에 공헌하고 나라 사랑을 실천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시상식은 25일 세종대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changyong@yna.co.kr)


ㅇ 제35회 외솔상에 이융조ㆍ이봉원 씨 수상  
    2013년 10월 21일 (월) 12:16:19 교수신문  editor@kyosu.net  

제 35회 외솔상 문화부문에 이융조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실천 부문에 이봉원 작가가 선정됐다.

이융조 이사장은 지금까지 50여 년 간 우리나라 구석기를 연구해, 역사의 상한선을 신석기에서 구석기로 올려놓아 식미지사관의 극복과 함께 새로운 역사해석에 기여했다. 우리나라 중부지역의 51개 선사유역을 찾아 발굴해, 국내ㆍ외 학계에 연구ㆍ발표해 문화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외국어로 된 구석기 관련 낱말을 우리말로 번역해 고유어와 한글의 이름짓기와 쓰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외솔회는 전했다. 이 이사장의 연구 논문은 385편에 이르며, 보고서 38편, 편저서 33권, 저서 13권을 집필, 발간했다.

실천 부문 수상자 이봉원 작가는 기록영화 제작가이기도 하다. 60년대 후반기 학창 시절에 한말글 사랑운동 동아리를 최초로 대학 안에 만들어서 교내ㆍ외로 활동했다. 사람이름을 한자 이름 대신 한말글로 쓰자는 운동을 펼쳐, 우리 사회에서 각종 이름을 한말글 이름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현재도 우라나라 독립운동에 큰일을 한 사람들을 찾아 글을 쓰고, 창작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말글 쓰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세종대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외솔상’은 국어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외솔 최현배 선생의 학덕과 나라사랑 정신을 기려 지난 1972년 제정됐다. 해마다 우리 말ㆍ글의 연구와 문화 발전에 공헌이 큰 사람과 나라사랑 실천이 뛰어난 사람에게 상장과 연구비를 준다. 외솔회는 1970년에 설립해 2천500여명의 회원들 두고 있다. 1971년 외솔회 기관지 <나라사랑>을 펴내 통권 121호째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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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권㉨1967- 전국 국어운동 대학생 동문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