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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임자 2013년 06월 25일 15시 50분에 남긴 글입니다.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는 일은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의 우리 얼말글 이야기] 우리말 이름 짓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by 아이티뉴스 2013-04-12 20:25:37

한말글 이름으로 자주 문화를 꽃 피우자.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이대로
  
2013년 4월 11일 오후 4시 한글학회 얼말글교육관에서 한말글문화협회(대표 이대로) 주최로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고 쓰기’란 주제로 학술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회 격려사에서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은 “이 세상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중국말로 이름을 지으면 중국 사람이 되고 영어로 이름을 지으면 영국이나 미국 사람이 된다. 참된 한국 사람으로 있고 싶으면 한국말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글자가 없던 시대부터 내려온 오랜 관습에 젖어 이름을 지으면 중국식 한자이름을 짓고 있으나 이제 거기서 벗어날 때이다.”라고 말했다.
  
“한말글 이름 짓기 발자취”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는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대표
  
그렇다. 이제 세계 으뜸가는 우리 글자인 한글이 있으니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는 것은 선택할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우리 말글로 이름을 잘 지을까가 문제다. 우리 배달겨레는 단군시대로부터 5000년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니 그 때부터 우리 겨레말이 있었을 것이고 이름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글은 그 보다 더 늦게 2000여 년 전 쯤 고구려, 백제, 신라 때부터 중국 한자를 들여다 썼기에 삼국시대부터 한자로 적었을 것이다. 한자로 적었어도 삼국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식 이름을 한자로 적었다.
  
그러나 신라 제 22대 지증왕 4년 (서기 503년)에 ‘서라벌’을 ‘신라’라 고치고 ”거서간, 니사금, 마립간, 차차웅“ 들의 존호를 버리고 ‘왕’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재위) 때에 중국 당나라 문화를 철저하게 받아들여서 우리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땅 이름과 관직 이름까지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박혁거세, 연개소문처럼 네 글자로도 짓던 우리 이름을 ‘김유신’처럼 세 글자로 짓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중국 문화식민지가 되었고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중국식 이름이 뿌리를 내린다. 1446년에 우리 글자인 한글이 태어났는데도 한글은 하층 글자로 취급하고 중국식 이름을 그대로 써오다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면서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게 된다.
그렇지만 1910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니 주시경 선생은 한글을 살려서 이 겨레를 일으키기로 한 뒤에 대한제국 때 만든 ‘국어연구학회’란 이름을 ‘한글모’로 바꾸고 당신의 이름은 ‘한힘샘’으로 당신의 아들 딸 이름에서 ‘산’을 토박이말 ‘메’로 바꾸어 큰 딸 ‘송산’은 ‘솔메’로, 큰아들 ‘삼산’은 ‘세메’, 둘째 아들 ‘춘산’은 ‘봄메’, 셋째 아들 ‘왕산’은 ‘임메’라고 한말글로 바꾸었다. 그 정신을 이어서 광복 뒤에 정종 동국대 교수는 아들 이름을 정어지루(목원대 교수), 음악가 금수현 선생은 아들 이름을 ‘금난새(지휘자)’로 사회운동가 김철 선생은 아들 이름을 ‘김한길(국회의원)’로 짓고 호적에 올린다. 한말글 이름 개척자요 선구자들이다.
그리고 1967년 서울대 국어운동대학생회(회장 이봉원)에서 ‘고운이름 뽑기’를 해마다 하면서 5000년 우리 겨레 역사에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는 바람이 분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식으로 이름을 짓고 쓰는 사람이 많고, 요즘에는 영어 바람이 부니 이름을 미국식 영문으로 이름을 짓는 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신라 때 당나라 식으로 이름을 바꾸어 중국 문화 식민지가 된 것을 다시 미국 문화 식민지로 가고 있다. 왜정 때는 왜놈들이 강제로 창씨개명을 하게 했으나 지금은 우리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니 한심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다. 새로 태어난 세종시는 마을과 길, 학교 이름을 우리 한말글로 짓고 세종정신과 한글이 꽃피는 도시로 만들려고 힘쓰고 있으며, 한말글 이름 짓기 운동가들은 1967년 5월 8일 서울대 국어운동대학생회에서 처음 우리 한말글 이름 뽑기 행사를 시작한 날을 ‘한말글 이름의 날’로 정하고 다시 한말글 이름 짓기 바람을 일으키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제 한말글 이름 짓기 연구를 하고 네 글자로도 이름을 짓고, 나라에서 정책을 세워 이름뿐만 아니라 전문 학술용어로 한말글로 바꾸고 새로 짓자.
  
이번 4월 11일 ‘한말글 이름 짓기 학술 발표회’에서 “한글이름 보급을 통한 국력향상방안” 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주제 발표를 한 두원네임컨설팅연구소 안동연(법학 박사)소장은 한말글 이름이 한자 이름보다 좋다는 것을 과학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면서 “한글이름이 한자이름보다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향상시켜 뇌파를 안정시키며 뇌의 균형 상태를 이루고, 혈압, 맥박을 정상화하며 생체에너지를 향상시키는 기능이 내재되어 있음을 오라측정기, 혈압계, 뇌파측정기 등 다양한 과학 기계로 확인했다. 한말글 이름을 온 국민이 가질 때 국력이 향상된다.”고 주장하고 실제 참석자들을 상대로 오라측정기로 그 측정 시연을 해 보였다.
  
사실 나는 1968년 국어운동대학생회 활동을 할 때 내 한자 이름 ‘李澤魯’를 ‘이대로’라는 한글 이름으로 바꾸었다. 나는 이름을 바꿀 때 부르고 외우기 쉽고, 내가 죽는 날까지 한글운동과 농촌운동을 두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내 형제 돌림자인 ‘로’자를 살려서 지어서 쓰다가 1993년 국회의원들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라는 운동을 할 때 호적까지 재판으로 바꾸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름을 한말글로 바꾸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오늘까지 국어독립운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났으며, 이 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내 경험에서 한 사람의 이름은 한 사람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968년 대학생 때 내 이름을 ‘이대로’란 한말글 이름으로 바꾸고 사용할 때 내가 받은 엽서
  
그러나 지난 4월 9일 동아일보는 “2011년 전국 법원에 개명(改名) 신청을 낸 인원은 16만5924명이며, 최근 10년간 누적된 개명 신청건수는 100만 건이 넘는다. 최근 법원에서 개명 신청을 허가받은 이름을 살펴보면 강남제비(여자), 강한힘, 경운기, 김개년, 김치국, 김팔랑, 김하녀, 방극봉, 방귀녀, 방기생, 백김치, 변분돌, 서동개, 석을년, 소총각, 송아지, 엄어나, 이매듭, 이아들나, 임신, 임신중, 조까치, 피바다, 홍한심 등이다. 과거 KBS2의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에서도 강도녀, 강아지, 고양이, 노숙자, 마진가, 배신, 배태랑, 변태, 안테나, 이백원, 이천원, 이만원, 오백원, 오만원, 육백만불, 차차 등 전국의 별나고 특이한 이름이 소개된 바 있다.” 라는 보도를 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처음에 이름을 잘 지어야겠다.
  
이제 세계 으뜸인 우리 글자, 한글을 가진 국민으로서 우리 말글로 사람이름과 땅이름, 회사 이름도 짓고 얼이 꽉 찬 나라, 건강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 통일될 나라 이름도 한말글로 짓고, 1500년 동안 중국식으로 지어온 한문 이름과 성씨도 한말글로 바꾸고, 미국식으로 창씨개명을 하지 말자. 일본 제국 식민지 때 우리 토박이로 된 땅이름을 모두 한자로 바꾼 것도 한말글로 바꾸고 되찾아서 자주 문화 꽃 피워 세계에 우뚝 서는 배달겨레가 되자. 세계에 빛나는 한글 나라, 생각만 해도 가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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