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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 2010년 11월 17일 12시 32분에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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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훈민정음'


[서평] ≪사쿠라훈민정음≫,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신성한 훈민정음에 사쿠라를 달지 마라!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서정쇄신은 ‘여러 방면에서 정치 폐단을 고쳐 새롭게 함’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이 말은 여러 곳에서 더욱 날개 돋친 듯 쓰인다. 정확한 어휘로 기사를 작성하고 내보내야 하는 신문 같은 매체에서도 서정쇄신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서정쇄신이 우리 겨레를 개조시키려 한 일제강점기 미나미 지로 총독의 ‘조선통치 5대 목표’였음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위 글은 ≪사쿠라훈민정음≫ 책에서 인용한 글귀다. 올해는 나라를 빼앗겼던 국치 100돌이고 나라를 되찾은 지 벌써 65년이 된 해인데 아직도 우리의 일본말찌꺼기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고대 야마토시절 자신들에게 고급문화를 가르쳐줬던 은혜의 나라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통치하려고 일제가 썼던 <서정쇄신>을 우리는 자존심도 버린 채 쓰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인들이 더욱 많이 쓴다.

이런 잘못을 통렬히 꾸짖는 책이 나와 화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에서 오랫동안 일본어 교육에 전념하던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이 “인물과사상사(대표 강준우)”를 통해 낸 ≪사쿠라훈민정음≫이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또 “참배”도 좋지 않은 일본말이라며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참배를 일본국어대사전 《다이지센》에 찾아보면 “さん‐ぱい【参拝】 社寺, 特に神社にお参りしておがむこと. 「伊勢神宮に―する」 →삼빠이: 신사나 절 등에 참배하는 것. 이세신궁에 참배하다.”라고 풀이했다. 곧 이 참배라는 말은 전쟁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들에게도 하는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국립현충원에 갈 때도 쓰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런 말들은 문화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지장, 자개장, 비단장, 화각장, 삿자리장, 주칠장, 죽장(竹欌), 용목장, 화초장, 화류장, 먹감나무장 등 이름을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종류의 장롱이 있었고 용도에 따라서도 버선장, 반닫이, 머릿장, 의걸이장, 문갑, 경상, 궤안, 뒤주, 고비 등이 있어 집 안에는 온갖 가구들로 넘쳐났다. 그렇게 발달했던 장롱문화를 가졌던 나라가 언제부턴가 한국 가구들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일본 장 이름 <단스>를 들여다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그렇게 배알도 없는 것일까?
  
그렇게 지적해주는 말들은 끝이 없다. “혜존”도 바로 그런 말의 하나다. “책을 받은 사람이 겉표지에 문집 이름을 적고 속표지에는 누구에게서 언제 받았는지를 적은 다음 책을 준 사람 이름 끝에다 “은혜롭게 주시기에 잘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쓴 것이 혜존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쓰던 것이 일본식을 따라 “내 책을 잘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둔갑한 것에 대해 이는 우리 겨레가 쓰던 본래 의미와는 동떨어진 행위라고 꼬집는다.

그밖에 높은 곳을 뜻하는 “마루”를 밀어내고 일본말 “정상”을 가져다 쓰며, 우리말 “마을”을 밀어내고 일본에서 천민집단이 사는 마을을 뜻하는 “부락”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물론, 일본말로 간질ㆍ발작을 뜻하는 뗑깡을 자기 자식에게 쉽게 쓰는 부모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또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을 평가하던 “수우미양가”가 일본 사무라이들의 목 베기에서 유래하였음을 추적하는 글도 신선하다.

쓰나미(지진해일), 타쿠하이(택배), 부츠류(물류), 재테크(재산불리기) 같은 말을 지금도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 쓰는 것은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언어의 확장이 아니라 또 다른 문화 식민지 역사를 예고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문제는 나라 말글생활의 바탕이 되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일본사전을 그대로 베꼈거나 말밑(어원) 설명이 어정쩡한 데 있으며 일본말찌꺼기 또한 그 어원이 일본어임을 분명히 밝혀준다면 우리말로 바꿔 쓰려고 노력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쉽다는 일침도 가한다.
        
그동안 일본말찌꺼기를 다루는 책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전혀 다르다. 기존 책에서 두루뭉술 넘어갔던 말밑 부분을 명쾌하게 풀어낸 점이 두드러진다. 또 지은이는 이 작업을 통해 일본에서 온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주장하기보다 일본말찌꺼기를 순화해야 하는 필연성을 제시해 읽는 이가 스스로 일본말찌꺼기를 쓰지 않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책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또 작은 부분이지만 지은이가 독자들이 읽어내기 쉽도록 배려한 것도 눈에 띄는데, 한 꼭지를 시작할 때 맛깔스러운 시나 적절한 인용문을 제시한 것은 물론 내용 중 필요한 것들은 《일본국어사전》이나 《조선왕조실록》등 자료를 충분히 제시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다만, 아쉬운 옥에 티는 자료로 인용된 사진들의 몇몇 출처가 제시되지 않은 점이다.

한국이 고대 일본에 엄청난 선진문화를 전해준 겨레라는 것은 일본 사서들이 앞다투어 말해주는 바와 같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한자에서 모양을 본뜬 가나문자에 머문 글자생활이지만 우린 세계 최고의 글자라고 평가받는 한글을 쓰는 겨레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일본사람들이 만들어 쓰는 낱말들을 민족적 자존심을 해쳐가면서까지 그대로 들여다 쓰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던가! 이것은 언어문화의 또 다른 식민문화이다.

2009년 11월에는 광복 64년 만에 겨우 친일 반역자들의 죄상을 기록한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펴냄)이 나왔고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뜻 깊은 국치 100년, 광복 65년을 맞아 여러 행사와 기념식이 있었지만 정작 ‘식민언어청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쿠라훈민정음> 의 지적처럼 경인년 호랑이해가 저물기 전 올해가 ‘일본말찌꺼기 청산의 원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책을 통해 가져 본다. 하나 더 이제 신성한 훈민정음에 사쿠라를 다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간절히 비손한다.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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