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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배층은 언문을 배척했는가

조선시대 언문의 제도적 사용 연구  
  

  

저자 김슬옹 | 출판사 한국문화사  
  
  
 정가 : 17,000원
2005년 10월 20일 출간 | ISBN : 8957263314
332쪽 | B5 | 1판  



조선시대 언문의 제도적 사용을 연구한 책.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언문과 관련된 947건의 기사 기록을 대상으로 언문을 통한 문자 생활의 사용 양상과 그에 따르는 의의를 규명하였다. 여기에서 언문, 즉 훈민정음이 조선왕조의 제도적 공식 문자였음을 지배층의 언문 사용을 중심으로 밝히고 있다.

2장에서는 언문 관련 용어를 통해 언문 사용 양상과 의의를 살펴보고, 3장에서는 언문의 제도적 사용과 의의를 알아보았다. 4장에서는 시기별 언문 사용과 의의를 정리하고 있다.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한국싸이버대학교 교육학부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춘천교대, 부천카톨릭대 대학원, 상명대 등에서 우리말과 국어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사고력과 삶 실천, 봉사를 강조하는 또물또 독서, 글쓰기 대안 교육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가천의과 대학교 강사, 연세대 사회교육원 주임강사, 한글학회와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원 전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한국싸이버대학교에서 2004년 2학기, 2005년 1학기 겸임교원(강사 포함) 강의 평가 1위로 2학기 연속 최우수 겸임교원상을 받았다. 10년간의 중고등학생 강의, 10년간의 대학생 강의, 5년간의 초등학생 강의 경험이 있으며, 7년간 각종 교사 연수 강의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논문: "입말투 글말의 전통과 뜻(학사학위 논문)" , "이른바 품사통용어의 사전 기술 연구(석사학위 논문)" ,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관련 기사를 통해 본 문자생활 연구(박사학위 논문)", "개념적 의미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 대하여" , "언어분석을 위한 맥락설정 이론" , "상보반의어 설정 맥락 비판" 등이 있다.
주요 저서: <그걸 말이라고 하니>, <삐딱하게 보고 뒤집어 생각해라>, <뜻깊은 큰소리 한글이름> (공)등 외 다수가 있다.

  

책머리에 v

1장 머리말 1
1.1. 연구 동기와 목적 1
1.2. 연구 방법 및 범위 4
1.2.1. 역사언어학의 담론과 맥락 4
1.2.2. ≪조선왕조실록≫을 통한 접근 방법 9
1.3. 연구사 개관 14

2장 언문 관련 용어로 본 언문 사용 양상과 의의 21
2.1. 주제어 선정의 의미 21
2.2. 주제어 국역의 문제 42
2.3. ‘언문’의 사용 양상과 맥락적 의미 46

3장 언문의 제도적 사용과 의의 57
3.1. 기관, 법, 제도 측면의 언문 사용과 의의 59
3.2. 왕과 사대부 관리층의 제도적 사용과 의의 64
3.3. 왕실 여성의 제도적 언문 사용과 의의 76
3.3.1. 권력 측면의 사용과 의의 77
3.3.2. 지배 계층 남성과의 소통 수단적 사용과 의의 84
3.4. 그 밖의 제도적 언문 사용과 의의 88
3.4.1. 임금의 행정 문서 사용과 교육 제도 88
3.4.2. 국가 정책용 사용과 의의 94
3.4.3. 외교 문서의 사용과 의의 100
3.5. 백성들의 언문 사용과 의의 102
3.5.1. 제도적 언문 사용과 의의 103
3.5.2. 언문의 반제도적 사용과 의의 110

4장 시기(왕)별 언문 사용과 의의 117

5장 맺음말 159

참고문헌 163
Abstract 171

부록 175
1.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언문’ 관련 기사 제목과 사건 요약 서지 정보 177
2. 세기별 언문사건 연표 269
  
  

이로써 보면, 언문 사용 측면에서의 발전은 언문 자체의 과학성과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철저하게 제도적 뒷받침과 사용 동기의 구체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의 문법 중심 연구의 귀중한 업적을 보완해 주는 상보적 효과를 갖는다. 특히 국어 생활사 측면에서 언문의 구체적 사용 양상의 흐름을 짚어 낼 수 있었다. 특히 지배층인 사대부와 관리들의 사용 양상과 권력 중심부에 있었던 왕실 여성들의 언문 사용은 언문 사용 발달의 주요 역학 관계를 보여 주는 소중한 결과다.
  

  

안녕하셨습니까? 세계문화유산 훈민정음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담은 새 책이 나왔기에 소개 드립니다.

▶ 핵심 결론
조선왕조실록은 철저히 지배층 중심의 역사 기록이다. 이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시대에 언문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가를 지배층의 관점을 중심으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언문과 직접 관련된 947건의 목록 자체가 언문 사용 양상과 의미를 보여 준다. 그간 ‘진서 ↔ 언문’으로 표상되는 단순 대립된 의미로 인식하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고 문법사 위주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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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습니까? 세계문화유산 훈민정음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담은 새 책이 나왔기에 소개 드립니다.

▶ 핵심 결론
조선왕조실록은 철저히 지배층 중심의 역사 기록이다. 이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시대에 언문을 어떻게 사용해 왔는가를 지배층의 관점을 중심으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언문과 직접 관련된 947건의 목록 자체가 언문 사용 양상과 의미를 보여 준다. 그간 ‘진서 ↔ 언문’으로 표상되는 단순 대립된 의미로 인식하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고 문법사 위주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는 ‘언문’ 창제 이후에는 다중 공용문자 사회로서, ‘언문’은 국가가 제정한 다중 공용문자 중의 하나였다. ‘언문’은 전체적으로 보면 ‘한문’에 비해 공용문자로서의 비중은 낮았지만 교화 정책과 실용 정책 측면에서는 한문과는 비교가 안 되는 비중을 지닌 공식 문자였다. 이는 언문이 단지 한문의 보조 차원의 문자라기보다는, 한문과는 역할이 다른 문자라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한자가 주류 문자였지만 관점과 기준을 달리하면 주류, 비주류는 바뀔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백성 교화 측면에서는 언문이 주류 문자이고 한문이 비주류 문자이다. 또한 왕실 여성에게는 언문이 주류 문자이고 한문이 비주류 문자이다.
이런 중심 논지에 따라 이 연구에서 새롭게 밝혔거나 강조된 내용을 각 장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첫째, ‘언문’의 의미에 관한 것으로 비칭이냐 통칭이냐는 이분법을 벗어나 맥락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현실적 주류 문자인 한자(진서)와의 대비와, 피지배층 위주의 사용 맥락으로 보면 비칭 측면이 부각되지만, ‘諺언-’에 담겨 있는 ‘전통성’, ‘입말성’, ‘백성’, ‘민간’ 등의 의미로 볼 때는 통칭성에 가깝다. 더욱이 교화 정책이나 피지배층의 저항 맥락으로 보면, 비칭이냐 통칭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저항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실제 쓰임새에서도 다계층 차원에서 조선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쓰였다는 것이 통칭성의 실질적 증거가 된다.
둘째, 실록의 국역화와 전산화는 실록의 가치를 훨씬 배가시킨 것이지만, 일부 오역의 경우는 언문 사용 양상 왜곡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특히 ‘-眞諺-’으로 표현된 구절은 한문과 언문으로 동시에 번역되거나 반포된 상황인데도 “한문을 언문으로 번역하여”로 옮겨 실제 역사적 상황의 왜곡을 가져옴을 알 수 있었다.
셋째, ‘諺-’ 관련 어휘들은 ‘언문’을 중심으로 언서, 언간, 언찰, 언교, 언록, 언요, 언해, 언석, 언번, 언역 등 다양한 어휘망을 형성하여 언문을 통한 문자 생활의 다양한 실제 쓰임새를 보여 줌을 알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주로 제도를 중심으로 언문이 공식 문자로서 어떤 역할을 했고 그로 인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첫째, 언문은 통합 학문의 최고 권위자이면서 최고 권력자였던 세종이 만들었지만 철저하게 제도, 법, 국가 공식 기관 등에 의해 보급되었다.
둘째, 언문은 조선왕조의 교화 정책 차원에서 창제되고 교화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제도 차원에서 사용되었다. 언해를 통한 교화 정책을 ≪경국대전≫에 명시함으로써 언해 정책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시행하였다. 교화 정책 차원의 언문 사용은 지배층으로 하여금 언문 사용의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피지배층 언문 사용과 확대의 근본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사대부들의 명분과 실리의 이중성이 오히려 언문 사용의 발달을 가져온 셈이 되었다. 성리학적 도덕주의라는 명분을 위해 과감하게 언문의 실리성을 인정하여 적극적인 제도 차원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셋째, 왕실 여성의 언문 사용은 언문의 권력적 효과를 가져와 사대부 관리층과의 소통 과정에서 언문 사용의 실질적 효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왕이나 사대부들과의 소통에서 철저하게 언문만을 사용했으며, 사대부들도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언문을 사용하였다. 언문이 여성이 쓰는 언어로서 남성 지배층에게 배타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존을 통하여 정치적 담론으로 작용하였다. 그들은 남성에 비해 비주류인 여성이었지만 권력 측면에서는 남성보다 우위에 있는 이중성이 역시 언문 발달의 핵심 고리가 된 셈이었다.
넷째, 임금의 행정 문서와 반포 문서, 외교 문서 등에서도 언문이 사용돼 공식 문자임이 입증되었다. 임금이 직접 사용한 문서에는 교지뿐만 아니라 밀지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였으며, ≪삼강행실≫과 같은 언해 책을 임금 주도 아래 지속적으로 발행하였다. 또한 양반이나 왕족들의 한문 교육용 언어로도 언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한문과 언문의 상호 보완 사용 양상을 보여 주었다.
반포 문서는 단지 정책 홍보용 문서뿐만 아니라 민심 무마용, 실용 정책용 등으로 폭넓게 쓰여 단지 국가의 언문 사용이 추상적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 정책용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해외에 간 외교관(사신)들도 국내 보고용으로 언문을 사용하고 중국 황제의 외교 문서도 언문으로 옮겨 반포되는 등 조선 중기 이후에는 언문의 사회적 공용성이 국제 관계 속에서 제대로 자리매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섯째, 백성들도 상언, 서장, 소장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언문을 사용하였다. 피지배층의 언로가 경직되고 폐쇄적인 상황 속에서도 언문 사용을 통한 상달 방식이 어느 정도 소통되어 언문이 백성들 사이에서 제도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광해군 때는 여성이 언문 상소를 올리고 그것이 수용되는 과정도 있어 우리가 평소 생각한 이상으로 언문이 사회적 기능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백성들은 익명서라는 반제도적 언문 사용을 통해 언문을 통한 정치 참여 효과를 가져왔다. 익명서는 세종 당시에 등장해 주요한 역사적 사건부터 상권 문제와 같은 생계형 익명서까지 폭넓게 쓰여 언문이 공식 제도로나 반제도적 측면에서나 아주 중요한 사회적 사건의 중심 도구로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연산군 때의 익명서 사건은 바로 폭군에 대한 저항 의미도 있었지만 넓게 보면 언문이 제도와 반제도 사이에서 사회적 변혁의 도구로도 기능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4장 시기별 언문 사용에서는 왕별로 먼저 사용 양상과 의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첫째, 왕별로 보면, 세종은 언문 창제자와 보급자로서의 완벽한 업적을 보여 주었고, 문종과 세조는 언문 보급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성종과 중종은 언문 보급의 중흥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연산은 언문을 전면적으로 탄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언로로서의 언문만을 탄압했다. 영조, 정조는 실학기에 백성에게 직접 다가서는 언문 사용을 보임으로써 시대 변화에 따른 언문의 확대 발전 과정을 보여 주었다.
둘째, 세기별로 알 수 있었던 것은 15세기는 세종의 창제와 보급 시도, 문종 세조의 정착, 성종의 보급 실천으로 한 세기가 언문 발전 차원에서 마무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6세기는 연산군의 폭정과 임진란 등의 시련은 있었지만 다행히 중종에 의해 발전된 언문 문화가 인종, 명종 때 잠시 주춤하다가 선조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다. 17세기는 광해에 의해 점차 발전 양상을 보이다가 인조와 효종, 현종에 의해 주춤하다가 숙종에 의해 다시 이어진다. 18세기는 영조, 정조에 의해 새로운 중흥기를 마련해 근대의 준비기로서의 실질적 발전을 이뤄냈다. 19세기는 18세기의 발전이 주춤하다가 고종의 상징적 국문 선언으로 마무리되었다. 20세기는 19세기 말엽의 국문 선언과 어쩔 수 없는 시대 변화에 의해 언문이 발전되어 가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언문 사용의 논의로 볼 때 고종의 1894년 ‘국문’ 칙령은, 갑작스런 근대화 과정 속의 불연속적 사건이 아니라 ‘언문’의 지속적인 제도적 쓰임새 때문에 가능한 연속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보면, 언문 사용 측면에서의 발전은 언문 자체의 과학성과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철저하게 제도적 뒷받침과 사용 동기의 구체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의 문법 중심 연구의 귀중한 업적을 보완해 주는 상보적 효과를 갖는다. 특히 국어 생활사 측면에서 언문의 구체적 사용 양상의 흐름을 짚어 낼 수 있었다. 특히 지배층인 사대부와 관리들의 사용 양상과 권력 중심부에 있었던 왕실 여성들의 언문 사용은 언문 사용 발달의 주요 역학 관계를 보여 주는 소중한 결과다.
제도 차원을 부각시키다 보니 미처 언급하지 못한 지배층과 피지배층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수많은 범죄 관련 언문 사용 양상도 언문 사용의 미시적 역사성을 보여 주는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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