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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 2015년 08월 17일 11시 35분에 남긴 글입니다.
꼭지1 규원사화.png (358.4 KB)   받음 : 1
17세기 고서 ‘규원사화’에 “한글을 예찬하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동쪽) 말에 ‘박달나무’를 일러 말하기를 ‘박달(朴達)’이라고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백달(白達)’이라고 했고, ‘임금’을 일러 ‘임검(壬儉)’이라 했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던 고로 다만 ‘백달임검’이라 일컬었는데, 후세에 역사를 쓰는 자들이 번역하여서 ‘단군(檀君 또는 壇君)’이라 한 것이고, 다시 후세에 전해 이르렀으니, 즉 다만 단군이란 글자만을 기록하고 단군이 백달임검의 번역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은 한자의 공과 죄가 서로 반반이 되는 것이다.
지금 만약에 언문(훈민정음, 한글)으로써 나란히 썼다면 즉 반드시 이런 폐단은 없었을 것이고 시골 들판에 사는 어리석은 남자라도 또한 가히 쉽게 깨달았을 것이며 문화가 열려 피어남도 다시 가히 빨랐을 것이다.” (번역 민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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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揆園史話)란... 1675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하였다는 역사서 형식의 사화(史話)로, 상고시대와 단군조선의 임금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저자 북애자(北崖子)는... 효종 ~ 숙종 시대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선비라고 스스로 소개한다. 붓을 던지고 전국을 방랑하던 중 산골에서 청평 이명이 저술한 진역유기를 얻어 역사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청평 이명(淸平 李茗)은 고려 말에 청평산에 머물렀던 도인으로 추정되고 '선가의 말이 많은(도교 용어가 많이 사용된)' 《진역유기》 3권을 지어 산골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여적의 《청학집》에 도인의 계보를 설명하는 중에 간단하게 언급되었다.

규원사화가 일반에 공개된 것은... 1925년 간행된 《단전요의(檀典要義)》에 일부가 인용된 것이 최초로 여겨진다. 그 내용은 1929년 간행된 《대동사강》에서도 인용되었고 전체 내용은 1932년 5월 이전에 등사되었다. 1934년에도 그 내용이 직접 인용되었으며, 1940년에는 양주동이 필사본을 소장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후에 국립중앙도서관 측에서 해방 직후(1945~1946년)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을 구입하여 귀중본으로 등록하였다. 이후 위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1972년에 고서심의위원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의 3인이 심의하여 조선 왕조 숙종 1년인 1675년에 작성된 진본이라 판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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